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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리포트

유럽 ‘아이들 안전한 디지털 활용’ 산업계도 자발적 공조

2014.12.5

유럽 ‘아이들 안전한 디지털 활용’ 산업계도 자발적 공조

영국 런던 웨스트본 초등학교
태블릿PC 등 수업에 사용하면서 시교육청이 유해물 엄격하게 통제
인터넷 활용 ‘기회’ 늘리고 ‘위험’ 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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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블릿피시(PC)를 받은 엘런(13)은 냉큼 사진을 찍고 슥슥터치를 하더니 의기양양하게 두 손으로 화면을 들어 쑥 내밀었다. 화면 속에는 기자의 얼굴 사진에 손으로 그린 리본이 달려 있었고 ‘환영해요’라는 글귀가 담긴 디지털 그림엽서가 어느새 완성되어 있었다. 기자가 엄지를 치켜세우자 엘런은 태블릿 뒤에 얼굴을 감추고 웃었다.
2013년 12월18일 영국 런던 남서부 외곽 서턴 지역에 있는 웨스트본 초등학교를 찾았다. 이 학교의 정보통신 담당 교사 벤 딕슨은 학생들을 인솔해 태블릿피시 활용 수업을 위한 교실로 안내했다. 6~10명이 앉을 수 있는 3개의 원형 탁자를 갖춘 교실 한켠에는 소형 냉장고 크기의 이동형 수납 공간이 눈에 띄었다. 딕슨 교사는 “30개의 아이패드를 보관·충전하는 기구”라고 설명했다. 그가 태블릿피시를 나눠주자 아이들은 옹기종기 모여 태블릿에 빠져들었다. 이 태블릿피시들은 교사의 필요에 따라 다양한 수업에 쓰인다. 딕슨 교사는 “예를 들어 역사 선생님이 이집트 수업에 인터넷 활용 교육이 필요하면 이 태블릿을 활용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각자 자기 세계에 갇히는 게 아니라 서로 작업을 보면서 협업하도록 지도하는 데 주의한다”고 덧붙였다. 교실의 원형 탁자 등은 그런 환경을 위한 배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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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용과 통제 함께 고민하는 접근
웨스트본 초등학교는 동시에 아이들이 인터넷에 접하는 콘텐츠에 대해선 엄격한 기준으로 통제한다. 학교 안에서 접속은 학교의 무선공유기를 통해서 이뤄지는데 아이들이 자신의 스마트폰을 이용하더라도 유해 사이트는 원천적으로 접속을 막고 있다. 딕슨은 “시교육청의 유해 데이터베이스를 기초로내가 유해 사이트를 수시로 업데이트한다. 유튜브·페이스북 등도 제한 대상”이라고 말했다.
웨스트본은 정부의 자금 지원을 받는 중상 등급 수준의 평범한 초등학교이지만, 영국을 비롯한 유럽연합(EU)에서 강조하는 아이들의 인터넷 사용에 대한 기본 원칙을 잘 보여준다. 바로 ‘기회’와 ‘위험’이라는 두 뼈대가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는 접근이다. 유럽연합의 행정부인 집행위원회(EC)의 의뢰를 받아 런던정경대학의 소니아 리빙스턴 교수 등이 2011년 조사·발간한 ‘유럽연합의 어린이 온라인’ 보고서는 이런 원칙을 명확히 하고 있다. “기회를 늘리려는 노력은 동시에 위험도 늘린다. 반면 위험을 줄이려는 노력은 기회도 제한할 위험이 있다.이 때문에 어린이들의 온라인 경험을 다각도에서 살피는 균형잡힌 정책은 접근의 핵심이다.” 이는 둘이 서로 따로 돌아가는 우리나라의 접근 방식과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 기회는산업적인 측면에서, 위험은 규제의 측면에서 다른 주체가 각각 따로 접근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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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 남서부 외곽 서턴 지역에 있는 웨스트본 초등학교에서 이 학교 6학년 학생들이 선생님과 스마트폰 사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왼쪽) 웨스트본 초등학교 케이리치 교장(왼쪽)과 정보통신 담당 교사 벤 딕슨. 리치 교장은 “디지털 기기로 새로운 교육
을 시도하고 있지만, 홀로 자기만의 세계에 빠지지 않도록 특히 주의한다”고 말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인터넷이 널리 확산하기 시작한 1999년 ‘더 안전한 인터넷 프로그램’(이후 프로그램)이라는 조직을 만들고 이 문제를 온라인 정책의 핵심 화두로 삼았다. 프로그램은 관련 사업의 지원, 기술 기업들에 대한 자기 규제 및 참여 강화, 국제적인 협업 등을 진행해 왔다.
특히 산업계의 자발적인 협업을 끌어내는 접근은 눈에 띄는 부분이다. 2013년 6월 세계 대표적 기술 기업들의 최고경영자(CEO)들은 벨기에 브뤼셀에서 어린이의 인터넷 사용을 돕는 분야에서는 경쟁이 아니라 협업을 하기로 유럽연합과 합의를 맺었다. 우리나라의 삼성전자와 엘지(LG)전자를 비롯해 마이크로소프트·구글·페이스북 등 31개 기업이 포함됐다. 합의내용은 각 사의 교육적 자료들은 무상으로 서로 공유할 것,이를 상징하는 공통의 브랜드를 개발해 유럽에서 공동으로 활용할 것, 학교에서 온라인 안전을 비롯한 교육과 관련된 모든 회사의 수십만명 직원들이 참여할 것 등이다.
이 프로그램의 실행 단위로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기구는 각국의 시민단체 등이 집행위원회의 자금을 지원받아 운영하는 ‘더 안전한 인터넷 센터’다. 영국에서 이 센터역할을 맡고 있는 시민단체 ‘차일드넷’의 루신다 해슬 정책·홍보 책임자는 런던의 사무실에서 만나 “인식 확대와 도움 지원, 응급센터 등 3가지 기능이 함께 이뤄지는 게 센터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영국의 경우도 분야별 특성을 갖춘 별개의 세 단체가 팀을 이뤄 이 사업에 응모해 집행위원회의 예산을 따냈다. 인식 확산을 맡고 있는 차일드넷은 2012~13년 영국 전역 176개 학교에서 학생 2만800명과 학부모 2500명, 교직원1400명에게 인터넷 안전에 대한 교육을 수행했다고 한다. 다른 두 단체에서는 각각 예방적인 도움말을 주는 상담센터와 온라인범죄 등 급박한 위험을 겪었을 경우 신고할 수 있는 ‘핫 라인’을 구축해 유기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프로그램은 현재 유럽 30개 나라에 이런 센터를 두고 있다.
웨스트본 초등학교를 떠나기 앞서 6학년 아이들에게 ‘인터넷은 무엇인지’를 물었다. 학생들은 앞다퉈 손들며 자신의 생각을 쏟아냈다. “세상의 모든 내용이 들어 있는 공간이죠.” (아서) “게임이에요.”(데런)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있는 공간이에요.”(엘런) “위험한 곳이에요. 누구나 나를 볼 수 있기 때문이죠.”(할리) 영국 정부는 인터넷 정책백서인 <디지털 브리튼>(2009)에서 영국 방송인 스티븐 프라이의 말을 빌려 인터넷 교육에 대한 그들의 관점을 이렇게 표현했다. “인터넷은 무엇보다 도시와 닮았다. 도시에는 빈민가, 도서관, 박물관, 극장, 가게도 있지만 아이들이 가도록 하지 않는 뒷골목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천천히 아이들에게 도시를 이용하는 법을 배우도록 하고, 그들은 결국 그렇게 할 것이다.”

 

런던/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