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스트레스 푸는 ‘친구’인데 엄마는 “스마트폰 그만 해”
조사결과, 중고생 35% 스마트폰 중독
게임·대화·검색하면 눈길 못 떼
공부 압박 시달리는 고3 “스마트폰 할 때가 하루중 웃는 때”
중학교 3학년 석민희(가명·16)양의 하루는 스마트폰으로 시작해서 스마트폰으로 끝난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카카오톡을 확인한다. 서울 관악구에 있는 집을 나서 학교로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가는 40분 동안 페이스북과 카카오스토리를 확인하고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로 올라온 연예인들 기사를 본다. 학교에 도착하면 스마트폰을 선생님에게 내야 하기 때문에 등굣길 내내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학교와 학원을 마치고 저녁 8시께 집에 돌아오면 밤 10시까지는 다시 ‘스마트폰 몰입 타임’이다. 주말이나 방학 때는 이 시간이 하루 4~5시간으로 늘어난다. 같은 반 친구들끼리 만든 방, 스터디그룹 방, 2학년 때 친구들 방 등 5개의 단체 카톡방에서 번갈아 가며 ‘카톡카톡’ 알림이 울린다. 석양은 웹툰을 찾아보고, 카카오스토리도 한다.
석양은 “스마트폰은 없어선 안 되는 것 같아요. 친구들하고 연락할 수도 있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찾아볼 수 있잖아요. 그런데 곧 고등학교 올라가는데 공부에 방해가 되어서 걱정이긴 해요”라고 말했다. 석양이 한국정보화진흥원의 인터넷중독대응센터에서 제공하는 만 10~18살 ‘청소년 스마트폰 중독 자가진단’ 검사를 해본 결과, ‘잠재적 위험 사용자군’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청소년 관련 인터넷 정책에는 실제 사용 주체인 청소년들의 관점도 중요하다. 서울시는 인터넷 중독대응정책에 청소년들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2012년 6월 전문가들과 함께 ‘청소년 열린 토론마당’을 개최했다.
여학생은 카카오톡, 남학생은 게임
석양이 이례적인 ‘위험 사용자군’은 아니다. 한국청소년정책 연구원이 전국 중고등학생 3000명을 조사해 2013년 11월 발표한 ‘아동·청소년의 스마트폰 중독 실태’를 보면, 전체 응답자의 35.2%(1058명)가 스마트폰에 중독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청소년정책연구원이 한국정보화진흥원에서 중독자로 분류한 잠재적 위험군과 고위험군을 합친 학생은 여학생의 경우 42.6%(605명)였고, 남학생은 28.6%(453명)였다.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스마트폰 중독 위험에 노출된 정도가 14%포인트 가량 높은 것이다. 이 연구 책임자인 이창호 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관계를 중시하는 여학생들이 메신저나 소셜네트워크를 사용하는 빈도와 시간이 더 많아 중독률이 높게 나온다. 또한 스마트폰 소셜게임은 쉽고 랭킹 기능을 제공해 여학생의 스마트폰 게임 이용률이 남학생과 거의 비슷하게 나온 한 원인이 됐다”고 말했다. 반면 남학생들은 스마트폰 중독률에선 여학생보다 낮지만 게임에는 더 빠져든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2013 게임 과몰입 종합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초중고생 12만209명 중 게임 ‘과몰입군’ ‘과몰입 위험군’은 1.9%(2288명)였다. 여학생 중 ‘과몰입군’ ‘과몰입 위험군’은 0.7%(377명)인 반면, 남학생은 3.0%(1872명)로 비율상 4배 이상 많았다.
보성고 2학년 이정훈(가명)군은 스마트폰을 2년 전 중학 졸업선물로 받은 이후 날마다 4~5시간 쓴다. 이군은 “메이플스토리 등 주로 게임을 하는데 최근 카톡을 삭제했다”고 말했다. 새벽 2시에도 빠져 있는 카톡을 그만두는 유일한 방법은 삭제뿐이라고 판단한 까닭이다.
중1 신성민(가명·15)군은 스마트폰을 “친구”라고 불렀다. 신군은 어머니와 함께 산다. 어머니는 아침 10시에 직장에 나가서 다음날 아침 7시에 들어온다. 혼자 남겨진 신군은 카카오톡 기반 게임인 ‘쿠키런’을 하면서 게임 세상을 달리고 달린다. 신군은 아침 7시40분에 일어나 학교에 걸어가는 10분 동안 쿠키런을 두 게임 정도 한다. 학교에선 쉬는 시간마다 게임을 한다. 수업시간에 게임 생각이 나서 공부에 집중이 되지 않을 때도 많다. 신군의 성적은 반 32명 중 17등으로 중간 정도다. 수업을 마치고 지역아동센터에 갈 때도 게임을 한다. 스마트폰을 보고 걷다가 서 있는 차나 전봇대·사람에 부딪힐 때가 많다. 신호등이 빨간색이었는데도 횡단보도를 건너다 자동차 경적 소리에 깜짝 놀란 적도 있다. 지역아동센터에서 저녁을 먹고 공부를 하다 밤 10시에 나와서 집에 가는 길에도 스마트폰을 본다. 새벽 1시에 잠이 들 때까지 2시간30분가량 게임을 한다. 주말엔 오후 1시쯤 일어나 컴퓨터로 10시간씩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인 ‘스타크래프트’를 하며 하루를 보낸다. 신군은 “게임을 이토록 많이 하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그냥 게임을 계속하고 싶은 거죠. 막연하게”라고 답했다.
스마트폰을 ‘보상’ 도구로 사용하는 부모들도 문제
청소년들의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늘어나는 주된 배경으로 치열한 입시 경쟁 체제가 지목된다. 부모와 교사가 스마트폰 사용 자제를 요구할 때도 ‘학습 방해’가 주된 명분이다. 스마트폰을 “시험 잘 보면…” “대학교만 가면…” 등 공부와 관련된 보상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청소년들에게 스마트폰은 공부와만 관련된 도구가 아니다. 입시지옥의 오아시스이면서 세상을 보는 창이자, 스스로 항행할 수 있는 나의 세계다.
곧 고3이 되는 김경은(가명·18)양에게 스마트폰은 해방구이자 활력소다. 아침 8시까지 학교에 가서 공부하다 밤 11시에 돌아와서 엄마 스마트폰으로 30분 정도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하는 것이 하루의 유일한 낙이다. 친구들이 올린 사진이나 웹툰을 보거나 메신저로 대화를 나눈다. 김양은 “스마트폰은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 수단이에요. 학교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은 너무 짧아요. 스마트폰 할 때가 하루 딱 한번 웃는 때예요”라고 말했다. 책만 보던 눈을 들어 세상을 둘러보는 도구이기도하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로 대학생들은 뭘 하고 지내는지, 다른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보면서 시야가 넓어지는 느낌도 든다. 김양은 “우린 뉴스도 못 보고 살잖아요. 요즘 철도노조파업 같은 소식도 전혀 모르다가 트위터를 통해서 알게 돼요. 고등학생이면 세상 돌아가는 것도 알아야 하잖아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30분도 편치만은 않다. 30분이 넘어가면 엄마가 눈치를 주기 때문이다. 스스로도 곧 고3이란 생각에 스마트폰을 이젠 그만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지만 억울하기도 하다.“스마트폰 좀 그만하라는 엄마 말을 들으면 스트레스를 풀 마지막 수단마저 빼앗기는 느낌이 들어요.”
이창호 연구위원은 “조사 결과를 보면 카톡·게임 같은 오락보다 지식 검색이나 생활정보 취득 등 생산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학생들은 중독률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미디어교육을 통해 학생들에게 좀더 다양한 목적으로 쓰는 방법을 지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카톡방에 불러 단체로 욕설… 스마트폰 늘자 ‘왕따’ ‘사이버불링’ 문제도 커져
“사이가 안 좋은 애들이 있었는데, 저를 카카오톡으로 초대해서 욕을 하더라고요. ‘×××아, 네가 ○○한테 욕을 했는데. 네가 그럴 만한 자격이 있냐’면서 단체로 욕을 해요. 한 다섯명 정도가. 저는 ‘나 안 그랬다’ 하면서 그냥 카톡방을 나갔어요.”(중3 여학생)
“친구한테 3000원가량을 빌렸는데 그 친구가 카카오스토리에다 ‘돈을빌려가고 안 갚으면 그것도 갈취 아니냐’고 올렸어요. 그 친구한테 학생회 친구가 있나 봐요. 학생회 친구가 그 글에 ‘그런 것도 금품 갈취야’라고 댓글을 달았어요. 그 친구가 저한테 직접적으로 말을 안 하니까 다른 애들도 제 얘기에 저를 욕하는 댓글을 달아서 기분이 나빴어요.”(중3 여학생·청소년정책연구원 인터뷰 인용)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스마트폰 확산에 따른 청소년 보호 방안 연구보고서’를 보면, 조사 대상 전국 중고생 3000명 중 6.2%가 스마트폰을 통해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를 ‘사이버 불링’(Cyber Bullying)이라고 하는데, 단체 카톡방을 만들어 괴롭히려는 학생을 초대한 뒤에 여러 명이 동시에 심한 욕설을 퍼붓거나 여러 학생들이 소셜 미디어에서 특정 학생을 언급하면서 험담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청소년들이 사이버상에서 상대방을 괴롭히는 현상은 기본적으로 청소년기의 특성인 불안정성 때문이다. 자신의 정체감을 찾기 위해 자신이 속하지 않은 집단이나 상대를 차별하는 것이다. 남학생은 자신이 어떻게 여학생과 다른지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식이다. 왕따는 이런 차별의 극단적인 형태다. 장근영 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사이버 불링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사실 사이버는 도구일 뿐이고 왕따는 청소년기의 보편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예전에 비해서 학교가 경쟁을 조장하고 부모가 자녀를 비교하는 강도가 높아지면서, 이를 보고 자란 아이들이 차별하는 강도도 더 세진 경향이 있다”고 진
단했다.
이는 사이버 불링 등으로 나타나는 청소년의 일탈을 스마트폰 사용 제한과 같은 방식으로 대응해서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것을 말해준다. 밤 12시부터 새벽 6시까지 16살 미만 청소년의 온라인게임 이용을 금지하는 ‘청소년 인터넷게임 건전 이용제도’(강제적 게임 셧다운제)가 대표적인 사례다.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중독 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게임중독법)도 게임을 마약, 알코올, 도박과 함께 중독유발 물질로 규정하고 정부가 관리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어 청소년의 스마트폰을 규제의 대상으로 보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전문가들은 스마트폰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 소통 확대와 비인간적 경쟁 환경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가족과 또래집단 사이에서 더 많은 소통을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 장 연구위원은 “오히려 피해자 입장에선 스마트폰으로 증거를 확보할 수 있다. 스마트폰을 못 쓰게 할 것이 아니라 사이버 불링 때 대응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더 근본적으론 부모나 교사가 학생을 비교하고 차별하지 않아야 사이버 왕따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