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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리포트

디지털 페어런팅

2014.11.21

디지털 페어런팅 IT 종사자의 남다른 자녀 교육법

“아이패드가 산수와 읽기를 더 잘 가르치리라고 생각지 않는다. 테크놀로지는 적합한 때와 장소가 따로 있다.”

자녀의 디지털 생활에 적극 개입하는 부모들

정보기술과 통신 분야를 여러 해 취재하면서 전자업체, 포털사, 인터넷 게임 업체, 통신업체, 소프트웨어업체에 종사하는 이들의 공통된 자녀 교육법을 발견하게 됐다.

그들은 타 직종 종사자들보다 엄격한 자녀 교육 지침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다른 분야에 대한 엄격함이 아니라 인터넷 게임과 휴대전화 또는 스마트폰 사용에 관한 분명한 규칙이다. 초등학생이나 중・고생 자녀를 기르는 게임사와 포털사 임직원들은 자녀의 인터넷 게임에 대해서 ‘주말에 한해 세 시간’, ‘토요일 한 시간’ 등 상세한 규칙을 정해둔 경우가 많았다.

여러 해 전의 조사이지만 게임회사 직원들도 자녀의 게임 시간을 엄격하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 온라인 게임 회사가 직원 287명을 대상으로 ‘자녀의 게임 이용 시간을 통제해야 하는지’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90퍼센트가 시간을 제한해야 한다고 답했던 것이다.

2014년 봄 국내 이동통신 3사의 홍보와 마케팅 담당 팀장, 임원들을 만나 실제로 각 가정에서 자녀들의 스마트폰 사용에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지를 취재한 결과 흥미로운 점이 발견됐다. 이통사들은 온 국민에게 최신형 스마트폰과 무제한 통화 요금제를 적극 판매해왔다. 덕분에 우리나라는 2014년 현재 영・유아를 포함한 인구 5000만 명보다 월등히 많은 5400만 대의 이동전화가 개통되었고 중・고생의 스마트폰 보유율도 85퍼센트 이상이 됐다. 하지만 통신사 간부들 가정의 이동통신 생활은 우리나라 평균적인 가정의 모습과 사뭇 달랐다.

통신사 간부들의 실제 사례

A 이동통신사의 홍보마케팅 부문 팀장은 맏딸이 초등학교 6학년이 되도록 휴대전화를 사주지 않고 버텨왔다. 학급에서 유일하게 휴대전화가 없는 학생의 부모가 통신사 간부라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그는 중학교에 입학한 딸의 요구에 못 이겨 2014년 봄 결국 스마트폰을 사줬다. 그는 딸에게 “학생은 스마트폰 말고 피처폰을 쓰는 것이 좋아”라고 권고하며 딸의 스마트폰 사용을 마지막 순간까지 늦추려 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3학년인 둘째 딸은 스마트폰은커녕 아예 휴대전화를 써보지 않았다.

B 이동통신사 홍보팀장은 중학교 1학년인 둘째 딸에게 2년 전에야 비로소 휴대전화를 사줬다. 스마트폰을 사줬지만 데이터가 포함되지 않은 월 1만 4000원짜리 음성 통화 전용 요금제를 골라줬다. 집에 들어오면 무선랜(WiFi)을 이용해 스마트폰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집 밖에서는 문자와 통화만 쓸 수 있는 요금제다. 최신형 제품을 사준 것도 아니다. 10만 원을 주고 중고 스마트폰을 샀다. “새 폰은 목돈이 들지만 중고 폰은 훨씬 돈이 덜 든다”고 그는 말한다. 이들 이동통신사가 ‘공짜 폰’, ‘기계 값 없음’을 미끼로 비싼 요금제를 2년, 2년 반 약정을 걸어 판매하는 것을 감안하면 놀라울 정도다. 이 팀장은 중3인 큰딸에게도 10만 원짜리 중고 스마트폰을 사줬다. 또래들과 어울리는 것이 중요한 중3인 점을 고려해 월 300메가바이트(MB)라는 소량의 데이터도 허용하고 있다. “기가바이트 단위가 기본이다시피 한 스마트폰 데이터 요금제에서 너무 작지 않으냐”고 물으니, 이 팀장은 “300메가바이트면 메신저 앱과 네이버 등 포털 서비스는 충분히 이용할 수 있다”고 답했다.

C 이동통신사의 홍보 임원은 아예 자녀의 이동통신 요금을 내주지 않는다. 자녀가 용돈으로 통신 요금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휴대전화를 쓴다는 것이 이 가정의 원칙이다. 그래서 중3인 딸은 초등 5학년 때, 초등 5학년인 아들은 1년 전에 스스로 피처폰을 구입해 쓰기 시작했다. 대신 그는 최근 아들이 녹음 기능이 필요하다고 해서 녹음기를 사줬다. 얼마 전에는 음악을 듣겠다고 해서 MP3 플레이어를 사줬다. 스마트폰 하나면 모든 것이 되는 요즘에는 거의 팔리지 않는 제품들이다. 그도 스마트폰을 사는 것이 돈도 덜 들고 편리하다는 것을 안다. 비싸게 대체 기기를 사주지만 이를 자녀의 스마트폰 이용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교육 투자’라고 생각한다.

이는 3개 통신사 홍보팀장과 임원들이 한결같은 자린고비 부모라서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이들을 취재해 기사로 다루었던 것도 통신회사 일부 직원의 이례적 사례라고 보기보다는 최신 통신 기기의 부작용에 대해 정보가 많은 직군의 일반적인 행동 패턴을 잘 나타낸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동통신사에서 십수 년 넘게 근무해온 이들 홍보 간부는 직무 특성상 휴대전화 사용이 불러오는 다양한 긍정적, 부정적 효과에 대해 누구보다 정통한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부모가 자녀들에게 생일 선물이나 상급학교 진학 선물로 스마트폰을 사준 뒤에 나 몰라라 하거나 애를 태우는 것과 달리 이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지식을 바탕으로 자녀들의 디지털 생활과 교육에 적극 개입하고 있다.

스마트폰을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 스티브 잡스도 자녀들에게는 아이패드 같은 첨단 디지털 기기 사용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런 사실은 잡스를 직접 취재했던 기자와 전기작가 월터 아이작슨에 의해 잡스의 사후 3년 뒤에 비로소 알려져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스티브 잡스의 아이패드 출시 발표. 하지만 “잡스는 저녁마다 길고 커다란 식탁에 앉아 아이들과 책·역사 등 다양한 화제로 얘기했다. 아무도 아이패드나 컴퓨터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출처: apple>

컴퓨터 모르는 실리콘밸리 2세들

미국 <뉴욕 타임스>에는 2011년 10월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세계적 정보기술 기업들이 몰려 있는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서 컴퓨터 전문가 수준의 부모들이 막상 자기 자녀들은 컴퓨터를 가르치지 않는 발도르프 학교에 보낸다는 것이었다. 발도르프 학교는 20세기 초 오스트리아 철학자 루돌프 슈타이너(Rudolf Steiner)가 주창한 비경쟁적이고 몸과 마음의 균형 발달을 중시하는 전인교육 방식을 채택한 학교다. 세계적으로 900여 곳, 미국에 160여 곳, 국내에도 10여 곳이 있다.

실리콘밸리 한복판인 캘리포니아 로스앨터스에 있는 퍼닌슐라 발도르프 초등학교는 학부모의 75퍼센트가 구글, 애플, 야후, 이베이, 휼렛 패커드(HP) 등 정보기술 기업에 다니고 있다. 그런데도 이 학교에는 컴퓨터가 한 대도 없다. 스크린보드, 빔 프로젝터 등의 멀티미디어 기기도 없다. 발도르프 학교는 연간 수업료가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1만 7750달러(약 2000만 원), 고등학교는 2만 4400달러(약 2600만 원)로 비싸지만 컴퓨터 구입에는 전혀 돈을 쓰지 않는다. 대신 학교에는 책, 연필, 분필 등 아날로그 교육 기자재만 있고 교실 한편에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 꽂혀 있다.

실리콘밸리의 퍼닌슐라 발도르프 학교 <출처: 퍼닌슐라 발도르프 학교 공식 홈페이지>

이 학교는 컴퓨터가 창의적 사고, 인간 교류, 주의력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교육에 활용하지 않고 있으며, 학생들에게도 휴대전화, 태블릿PC, 노트북 등 다른 디지털 기기를 가져오지 못하게 한다. 이 학교 5학년 앤디의 아빠인 앨런은 구글 직원이다. 앨런은 “아이패드가 산수와 읽기를 더 잘 가르치리라고 생각지 않는다. 테크놀로지는 적합한 때와 장소가 따로 있다”고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에 근무하면서 이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고 있는 피에르 로렌트는 “어릴 때 컴퓨터를 안 배우면 디지털 시대에 뒤진다고 하는데, 컴퓨터를 다루는 것은 치약을 짜는 일만큼 쉽다. 아이들이 좀더 큰 뒤에 컴퓨터에 익숙해지는 것이 무엇이 잘못됐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발도르프 고등학교의 졸업생 94퍼센트가 버클리대학 등 명문대에 진학한다는 통계는 이 학교에 대한 관심을 더 집중시켰다. 물론 아이들의 명문대 진학에는 학부모의 고학력, 고소득, 자녀 교육에 대한 높은 관심이 한몫했겠지만 말이다.

디지털 시대에 부모가 된다는 것

국내에도 스마트폰과 인터넷 중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일부 기숙학교나 종교계 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스마트폰 같은 디지털 기기를 소지하거나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규칙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다. 많은 부모들은 자녀가 스마트폰과 인터넷 때문에 공부에 몰입하지 못하고 방해받는다고 걱정한다. 하지만 각 가정마다 환경이 제각각이고 자녀마다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디지털 기기를 허용하거나 차단하는 것은 좋은 교육방법이 아니다.

기술적 환경에 빠져 살면서도 자신이 생활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무지하고 더욱이 자녀가 만나는 기술적, 사회적 환경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다가 나중에야 그로 인한 결과와 부작용에만 신경을 쓰는 것이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다. 사실 아날로그 세대로 살다가 뒤늦게 디지털 문명을 만나 스마트폰과 인터넷 세상에서 가까스로 조작법을 익힌 성인 세대가 실리콘밸리나 국내 인터넷 기업에서 근무하는 정보기술 전문가와 같은 정보와 식견을 갖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디지털 세상을 제한 없이 만나게 될 자녀가 스스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부모가 자녀와 디지털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소통과 신뢰의 관계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지 않을까.

국내외 정보기술업계에서 날마다 쏟아지는 수많은 뉴스를 접하고 그중에서 중요한 뉴스를 선별해 전달해야 하는 기자로 일하면서 내가 느낀 것도 비슷했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뉴스가 쏟아져 새로운 이슈가 만들어지고 정보기술 환경이 변해가는 것을 현장에서 취재하는 기자로서도 제대로 따라가며 이해하기가 숨 가쁠 정도였다. 일반 사용자가 정보기술 세계에 대한 통찰력을 갖추고 자녀에게 올바른 길을 안내한다는 것은 실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보통 사람이 정보기술 세계에서 새로운 정보와 동향에 정통한 사람이 되기는 어렵고 그렇게 될 필요도 없다. 그렇지만 자신에게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힘과 구조에 대해서는 그것이 아무리 거대하고 불가항력적 위력을 지니고 있더라도 그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는 필수적이다.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거리를 유지하고 비판적, 반성적 눈길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부모 자신이 주체적 사용자가 되어 자녀가 만날 환경에 대해서도 자녀와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찾아가도록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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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권 | 한겨레신문 부설 사람과디지털연구소 소장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한양대 언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한양대 신방과 겸임교수를 지냈다. 1990년부터 한겨레신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2014년 설립된 사람과디지털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당신을 공유하시겠습니까?](2014), [인터넷에서는 무엇이 뉴스가 되나](2005), [별별차별](2012, 공저)을 저술했으며, [잊혀질 권리](2011)를 번역했다. 사람과디지털연구소를 통해 디지털 시대, 기술의 새로움과 편리함 너머 더 행복하고 지혜로운 사용법을 성찰하고 널리 알리면서 ‘디지털 리터러시’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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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철학과 구체적인 지침을 ‘디지털 리터러시’ 개념으로 제안한다. 디지털의 속성과 구조를 파악하고 디지털 문법을 제대로 이해하고 사용하는 능력이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 필수 교양이 된 것이다. SNS가 주는 박탈감이나 행복감 모두를 성찰하면서 도구로서 현명하게 사용할 방법을 권한다. 사람과 디지털의 건강한 관계 맺기를 위한 지침서!
발행2014.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