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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사람이 만든 건 사람이 허물 수 있어” 망가진 인터넷 재설계 꿈

2018.10.8
팀버너스리의 ‘솔리드’ 시도 의미

“인터넷이 불평등과 분리 되레 키워”
개인통제권의 탈중앙형 웹플랫폼 시동
시도 성공 여부는 생태계 형성에 달려
버너스리 “해커는 자유 갈망” 기대
팀버너스리가 개발하고 있는 솔리드 기술로 만들어진 다양한 애플리케이션. 이용자는 솔리드 기반의 인럽트를 이용해 거대 플랫폼 기업들의 서버에 데이터를 제공하지 않고도 기존과 유사한 다양한 인터넷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다. 솔리드(solid.inrupt.com) 제공

“나는 항상 웹이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믿어왔습니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이를 보호하기 위해 격렬하게 싸우는 이유입니다. 가까스로 더 나은 세상, 더 연결된 세상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룩한 모든 가치에도 불구하고, 웹은 불평등과 분열을 가속화하는 엔진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중대한 전환점을 맞아, 나는 더 나은 방향으로의 변화가 가능하고 필수적이라고 믿습니다. 내가 최근 몇년 동안 매사추세츠공대(MIT) 등의 동료들과 협력하여 인터넷에서 개인의 힘과 영역을 회복하는 오픈소스 프로젝트인 솔리드(Solid)를 개발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팀 버너스리가 지난달 28일 블로그에 올린 글이다. 버너스리는 1989년 스위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연구원 시절 월드와이드웹(www)을 개발해 오늘날 인터넷을 만인의 도구로 만든 ‘웹의 아버지’로 불린다. 버너스리의 최근 행보는 소설속 프랑켄슈타인 박사에 비견된다. 메리 셸리의 1818년 작 <프랑켄슈타인>에서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자신이 만든 인조인간이 괴물로 변해 많은 피해를 일으키자, 이를 제거하기 위해 북극까지 쫓아가 사투를 벌인다. 버너스리는 웹(www)이 오염으로 인해 더 이상 고쳐 쓸 수 없는 지경이라며, 창조자가 앞장서 자신의 피조물을 버리자고 주장하고 있다.

‘웹의 창시자’ 팀 버너스리
‘웹의 창시자’ 팀 버너스리


버너스리가 유럽입자물리연구소에서 방대한 자료를 효율적으로 공유하기 위한 도구로 설계한 웹은 기본적으로 과학자들의 연구용이었다. 하지만 버너스리가 웹의 정신을 공개와 공유라고 강조하며 1991년 특허신청 없이 웹기술을 전면 공개한 뒤로, 인터넷은 소수 전문가의 네트워크에서 만인의 도구로 변신했다.


버너스리는 지난해 8월 <베너티페어>와의 인터뷰에서 페이스북의 개인정보 유출과 가짜뉴스가 영향을 끼친 2016년 미국 대선 등을 언급하며 “눈 앞에서 핵폭탄 구름이 피어오르는 것같은 충격을 받았다”며 “웹이 민주주의와 휴머니즘에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인권을 침해하고 빈부 격차를 확대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거대 기업이 정보와 이익을 독점하고 대중을 감시하며 가짜뉴스가 정치선전에 이용되는 인터넷을 꿈꾼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인터넷에서 독립성과 이용자 사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권리장전’이 필요하고 사찰과 검열 없는 인터넷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인터넷엔 포르노와 사기 등 각종 불법정보가 넘치지만 이는 웹 이전에도 불법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인터넷이 만들어낸 부작용이다. 해킹으로 인한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과 프라이버시 침해, 가짜뉴스처럼 상업적·정치적 목적으로 오염된 인터넷, 거대플랫폼 기업의 조작 대상이 된 이용자 피해 현실 등이다. 이는 이용자 부주의와 사악한 사업자만의 책임이 아니라는 게 인터넷 설계자들의 생각이다. 인터넷의 설계 결함에서 비롯한 결과다. 인터넷의 초기 설계자, 개발자들이 인터넷을 만인의 보편적 도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상태에서 관련 기술을 발전시켜오다가 어느 순간 상업적 도구가 되고 모든 것과 결합한 거대한 네트워크로 진화한 결과의 산물이다.


인터넷 통신 규약(TCP/IP)을 만들어 인터넷의 아버지로 불리는 빈트 서프도 결함을 인정한다. 그는 인터뷰에서 “1973년 인터넷을 처음 설계했을 때, 인터넷 기술의 잠재력에 대한 다양한 비전과 위력에 대한 기대가 있었지만 오늘날처럼 수십억명 규모로 발전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라며 “다시 설계할 수 있다면 훨씬 더 강력한 인증과 암호화 방식을 시스템에 도입할것”이라고 말했다. 취약점 한곳만 드러나도 뚫려버리는 인터넷은 속성상 다수 이용자보다 소수의 파괴자와 공격자에게 친화적 구조라는 점에서 보안성을 높인 새로운 구조를 요구한다. 빈트 서프가 현재의 인터넷을 여전히 개방과 공유의 도구로 보고 구글에서 부사장 겸 인터넷 에반절리스트로 일하는 것과 달리 버너스리는 구글과 페이스북, 아마존 등 거대 플랫폼 기업에 매우 비판적이다.


버너스리는 현재 웹은 소수 플랫폼 기업이 중앙집중형 서비스로 서버에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축적하고 통제하는 기술구조이고, 이러한 거대 기업이 점점 더 커지면서 인터넷을 불평등과 격차 확대의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가 솔리드를 활용해 개발하고 있는 웹브라우저 ‘인럽트’는 현재처럼 다양한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서비스 이용으로 만들어지는 모든 정보가 개인저장소(pod)에 저장되고 서비스 기업 아닌 개인이 통제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웹의 설계자가 꿈꾸는 탈중앙형 새로운 인터넷 플랫폼의 성공 여부는 향후 이용자와 개발자들이 만들어낸 생태계에 달려 있다.


그는 플랫폼 기업과 정부 통제에 반발하는 각국의 개발자, 해커, 인터넷 활동가들의 반향과 연대를 기대한다. 그는 최근 <패스트컴퍼니>와의 인터뷰에서 “개발자들은 언제나 어느 정도 혁명적 정신을 품어왔다”라며 해커들에게 무엇보다 매력적인 것은 ‘자유’일 것이라고 말했다.


프리드리히 실러는 1804년 작품 <빌헬름 텔>에서 “크고 견고하게 지어 절대 무너지지 않을 성벽”이라며 절망하는 동료 노역자에게 빌헬름 텔이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은 인간의 힘으로 무너뜨릴 수 있다”라고 말하게 한다. 글로벌 인터넷도 너무 거대하고 견고해 난공불락처럼 보이지만 사람이 설계한 구조물일 따름이다. 팀 버너스리의 시도가 주목되는 이유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