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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도전받는 ‘해커정신’…“인간은 ‘실패 통한 학습’ 대상 아냐”

2018.02.20
Weconomy | 구본권의 디지털프리즘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부작용에
내부·외부 비판에 기술 윤리 부상
‘빠른 실행 뒤 피드백 받아 패치 수정’
인터넷기업 경영철학 본격 도마 올라

페이스북은 ‘해커 정신’으로 운영되는 기업이라고 말하는 페이스북의 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는 2014년 4월30일 페이스북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페이스북의 모토를 ‘빠르게 움직이고 틀을 깨뜨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페이스북은 ‘해커 정신’으로 운영되는 기업이라고 말하는 페이스북의 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는 2014년 4월30일 페이스북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페이스북의 모토를 ‘빠르게 움직이고 틀을 깨뜨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속도냐, 안전이냐.” 정보기술 업계에 무거운 숙제가 던져졌다. 대부분의 건설현장과 공장에는 ‘안전제일’ 표어가 걸려 있지만, 그동안 정보기술 업계에서 ‘안전 최우선’은 구닥다리 생각으로 여겨졌다. 변화 속도가 빠르고 플랫폼 선점 효과가 결정적인 인터넷 서비스 분야에서는 완벽한 제품을 만들어 내놓기보다 남보다 빠르게 새로운 제품을 내놓는 게 중요했다. 내부와 외부에서 거듭된 테스트를 통해 완벽함을 검증하기보다는 일단 서비스를 제공하고 난 뒤 사용자 피드백을 통해 드러나는 단점을 추후에 보완해가는 전략을 선호해왔다.


최근 대표적인 글로벌 정보기술 서비스가 연쇄적으로 직면하고 있는 기술의 악용과 부작용 사례는 그동안 소프트웨어와 인터넷 서비스 기업들이 선호해온 개발과 서비스 전략에 근본적인 물음과 비판을 던진다.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은 제품을 서비스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페이스북에서의 가짜 뉴스 확산, 트위터의 가짜 팔로어 문제, 어린이용 유튜브의 선정적 콘텐츠 서비스 등이 최근 잇따라 사회문제화하면서 정보기술기업의 서비스 철학에 대해 제기되는 근본적인 문제 제기다. 페이스북 부사장을 지낸 차마트 팔리하피티야는 지난해 말 페이스북을 “도파민에 의해 작동하는 단기 피드백 순환고리”라고 규정하고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을 파괴하는 도구인 페이스북의 역할에 대해 ‘엄청난 죄책감’을 느낀다고 고백한 바 있다. 세계 최초 음원공유 사이트인 냅스터를 창업하고 페이스북의 초대 사장을 지낸 숀 파커도 지난해 말 “소셜네트워킹은 인간 심리의 취약성을 착취하는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페이스북의 최고경영자인 마크 저커버그는 하버드 재학 시절 대학 기숙사 서버를 해킹하는 해커로 활동하며 페이스북을 시작했지만, 세계 최대의 소셜미디어 기업을 일궈낸 뒤에도 수시로 ‘해커 정신’을 강조해왔다. 캘리포니아 팰로앨토에 있는 페이스북 본사는 해커 정신을 상징하는 각종 상징물과 표어로 가득하다. 저커버그는 2012년 2월 기업공개를 신청하면서 투자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페이스북이 해커의 길을 걷는 기업이 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는 당시 편지에서 “흔히 해커에게는 컴퓨터 침입이라는 부당하고 부정적인 설명이 따라붙지만, 본디 해킹은 ‘단순히 뭔가를 재빨리 만들어내거나 시험해보는 것’을 의미한다”며 ‘해커 정신’은 “끊임없는 개선과 재시도에 몰두하는 태도”라고 설명했다. 저커버그는 2014년 4월30일 페이스북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페이스북의 모토를 ‘빠르게 움직이고 틀을 깨뜨리는 것’(Move fast and break things)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정형화된 성공 모델이 없고 변화가 빠른 인터넷 서비스에서는 실행을 머뭇거리는 대신 과감하게 아이디어를 실행해보고 실패를 통해 빠르게 학습하는 것이 무엇보다 효과적이라는 것이 페이스북의 성장을 설명하는 기업 철학이자, 많은 정보기술기업들의 서비스 방침이었다.


구글의 공동창업자 래리 페이지도 2015년 구글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흥미롭고 중요한 일들을 실험하고 싶지만 법과 규제에 막혀 있다. 새 기술을 실험하고 사람과 사회에 끼칠 영향을 알고 적용할 수 있는 안전한 곳이 필요하다”며 ‘실험의 자유’를 호소한 바 있다.


속도와 플랫폼 선점을 강조하며 실험적 시도를 독려하는 것은 페이스북이나 구글만의 특성이 아니라 인터넷 서비스 업계에 보편적인 현상이다. 이러한 속성은 인터넷 서비스가 변화가 불가능한 고형적인 형태의 제품이 아니라 출시 이후에 지속적으로 변화와 개선이 가능한 소프트웨어 형태의 비정형 서비스라는 데서 비롯한다. 소프트웨어 서비스는 제품 출시 이전부터 ‘베타서비스’라는 이름으로 제공되어 사용자 피드백을 통해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서비스가 수정되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완성된 제품을 내놓은 경우에도 취약점이 드러나거나 개선할 사항이 생기면 수시로 패치 보급과 업데이트 등의 방법을 활용한다. 또한 엄격한 보안과 무결성이 요구되는 금융거래나 국방 등 분야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서비스가 사용자 동의를 거쳐 무료로 제공되는 형태를 지녀 이용자들의 서비스 기대 수준도 높지 않다.


하지만 소프트웨어의 이런 속성에도 불구하고 소셜미디어와 검색 등이 실제 생활에 끼치는 영향이 커지면서 인터넷 서비스에 대해 속도와 실험정신 대신 안전성과 윤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달 초 미국에서는 구글과 페이스북을 다니던 직원들이 이들 기업을 감시하는 단체 ‘인도적 기술센터’를 설립하고 ‘기술의 진실’ 캠페인에 나섰다. 지난해 독일 베를린에 설립된 알고리즘워치는 알고리즘을 개발자와 기업에만 맡기지 말고 이용자와 사회가 적극 감시하고 참여할 것을 주장하는 비영리단체다. <뉴욕 타임스>는 지난 12일치 기사로 하버드대, 스탠퍼드대, 텍사스대, 매사추세츠공대, 코넬대가 인공지능과 머신러닝 등 소프트웨어 전공자들을 대상으로 기술윤리 교육에 나선다는 미국 컴퓨터 교육의 새로운 흐름을 소개했다. 뉴욕대에서 데이터과학 윤리를 강의하는 로라 노렌 박사는 <뉴욕 타임스> 인터뷰에서 “소프트웨어는 패치를 제공할 수 있지만 만약 사람의 평판에 상처를 낸다면 이는 패치로 치유할 수 없다”며 “‘빠르게 움직이고 틀을 파괴하라’는 아이디어에는 어두운 측면이 있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