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삼의 디지털 사피엔스

‘1984’의 압제자 대체하는 ‘친애하는 빅브라더’

2017.11.21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현대적으로 각색한 작품을 국립극단이 공연 중이다. 원작 소설은 소련 같은 전체주의 국가의 초감시체제와 개인의 말살을 비판하기 위해 1949년 발표되었지만, 연극 <1984>는 첨단기술에 의해 감시가 보편화하고 일상화하고 있는 현재의 디지털 세상에서 새롭게 해석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작품 배경이다.


지난 5일 연극 공연 이후 진행된 ‘공연읽기’ 코너를 맡아 관객과의 대화를 나누었다. 오웰이 작품을 구상한 시기엔 전체주의 국가의 절대권력이 시민의 자유와 사적 공간을 압살하는 빅브라더였지만, 오늘날 빅브라더는 중국·북한처럼 정보기술을 통제하고 감시도구로 사용하는 국가만이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했다. 오히려 페이스북·구글 같은 글로벌 정보기술기업, 상세한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디지털 기술, 편리함을 위해 프라이버시를 자발적으로 제공하거나 다른 사람의 사적 영역을 엿보려는 사용자들의 끝없는 욕망이 오히려 새로운 빅브라더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폴란드 출신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친애하는 빅브라더>에서 디지털 세상을 살아가는 이용자들은 빅브라더에게 저항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빅브라더를 요청하고 자발적으로 충성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1998년 개봉된 <트루먼 쇼>는 타인의 내밀한 삶을 모든 사람이 일상의 오락거리로 삼는 미래를 풍자적으로 그렸지만, 이내 현실이 됐다. 네덜란드에서 1999년 시작된 리얼리티 텔레비전 프로그램 ‘빅브라더 쇼’는 일반인 남녀 10여명을 외부와 단절된 공간에서 100일간 생활하게 하고 모든 일을 카메라로 중계했다. ‘인간 동물원’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폭발적 호응으로 단기간에 72개국으로 확산됐다. 국내에도 다양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인기다. 페이스북에서 내밀한 사생활을 공개하는 행위는 일상이다.


유발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에서 더 많은 지식과 정보를 통해 합리화를 추구한 호모 사피엔스가 결국 데이터를 숭배하는 데이터교를 만들어냈다고 주장한다. 정보기술의 편리함과 효율성에 중독된 이용자들이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신뢰하고 스스로 자신의 모든 것을 제공하고 있는 모습이 하라리가 말하는 데이터교 신자들의 일상이다. 오늘날 세상에서 빅브라더는 <1984>에서 텔레스크린 너머에 존재하는 누구인지 모를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빅브라더는 우리가 신뢰하며 모든 정보를 기꺼이 제공하는 정보기술 자체이자 사용자의 끝없는 욕망이다.


구본권 한겨레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