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354093_003_20170221165515506

기사

인공지능 위협 맞서는 방법은 ‘사이보그화’?

2017.02.21

선천적 장애 극복 위해 출발한

보조장비 개발이 자연인 능력 추월

뇌-기계 연결, 브레인임플란트 주목

“생물적 지능과 디지털 지능 결합”

주장 배경엔 오랜 ‘인간 향상 시도’

2011년 9월20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육상경기에서 피스토리우스(가운데)가 비장애인들과 달리기 경주를 하고 있다. 위키코먼스 제공

*트랜스휴머니즘과 인간향상 시도

#1. ‘블레이드 러너’로 불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육상선수 오스카 피스토리우스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출전 자격을 놓고 논란을 부른 바 있다. 피스토리우스는 발목이 없는 상태로 태어나 의족 착용을 위해 무릎 아래를 절단한 장애인 육상선수다. 그는 의족 등 보조기기를 착용하고 운동을 익혀 육상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2004년 아테네 장애인올림픽에서 200m 달리기 금메달을 땄다. 장애인올림픽 우승 이후 피스토리우스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육상 부문에 출전하겠다고 선언하고 준비했으나 출전 자격이 문제됐다. 국제육상연맹은 피스토리우스가 경기 때 착용하는 탄소섬유 재질의 스프린터용 의족 덕분에 다른 선수보다 ‘불공정한 이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올림픽 출전자격을 줄 수 없다고 밝혔다. 국제적 비난 여론이 일었고 피스토리우스는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에 제소해, 출전 제한이 부당하다는 결정을 얻어냈다. 그는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에서 장애인 최초로 남자 1600m 계주 은메달을 획득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도 출전했지만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휴 헤어 교수는 10대 때 조난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뒤 암벽등반용 의족을 개발해 70m 넘는 암벽을 등반했다.

#2. 2016년 10월8일 스위스 클로텐에서는 제1회 사이배슬론(Cybathlon) 대회가 열렸다. 사이보그(Cyborg)들의 경기(athlon)라는 의미다. 사이배슬론은 장애인들이 로봇과 뇌-기계 연결장치(Brain-Machine Interface) 등 신체능력 증강 기기를 착용한 사이보그가 되어 벌이는 대회다. 한국도 완전마비 장애인이 로봇을 입고 장애물을 통과하는 외골격 종목에서 동메달을 땄다. 뺑소니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지체장애1급 김병욱(42)씨가 외골격 장치(엑소스켈레톤)를 착용하고 출전했다. 매사추세츠공대 미디어랩의 휴 헤어 교수는 10대 때 암벽등반 도중 조난사고로 두 다리를 잃었지만 여전히 암벽등반을 즐긴다. 등반용 의족을 개발해 착용하고 70m 넘는 암벽도 거뜬히 오른다. 두 다리를 잃고 장애인올림픽 달리기 선수로 출전했던 에이미 멀린스는 이후 모델과 영화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멀린스는 테드(TED) 강연에서 가늘고 늘씬한 의족을 착용한 자신을 부러워하던 동료가 “불공정하다”고 불평한 것을 소개했다.

선천적 하반신 장애로 무릎 아래가 없는 에이미 멀린스, 육상선수 활동 이후 모델로 활약하고 있다.

타고난 신체적 장애를 극복하고 불리한 여건에서 능력을 한껏 향상시키려는 이들이 전하는 ‘인간 승리’의 사례들이다. 기술의 도움으로 과거엔 상상하기 어렵던 수준까지 인간 능력이 향상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척수마비 환자가 생각만으로 기기를 조종해 로봇 팔과 다리를 사용하는 뇌-기계 연결 장치나 외골격 증강 기술이 실용화를 향해 진전하고 있다. 앞으로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을 적극 활용할 경우 사람은 타고난 신체적·인지적 능력 이상의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뒤따른다. 이는 기술 발전을 통한 장애와 한계 극복이라는 인도주의적 모습을 띠고 있지만, 새로운 윤리적 문제도 안고 있다. 인간 능력 향상기술은 어느 수준까지 발달할 것인가, 각종 기기와의 결합을 통해 사이보그화하려는 인간을 어느 단계에서 제어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이다. 미군은 오래전부터 보병의 전투력 향상을 위한 외골격 증강 장치 기술을 개발해오고 있다.

그동안 유전공학과 줄기세포 등 신체적 차원에서 이 문제가 다뤄져왔지만, 최근에는 인간 두뇌 기능 향상과 관련한 주장이 나오고 있다.

테슬라의 창업자 일론 머스크

전기자동차업체 테슬라의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는 영국의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등과 공동으로 인공지능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가능성을 경고해온 인물이다. 그는 최근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주장을 제기했다. 인공지능 시대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람이 기계와 한 몸이 될 필요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머스크는 지난 13일 두바이에서 열린 세계정부서밋 연설에서 “인간의 생물학적 지능을 디지털 지능과 결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람 뇌를 컴퓨터와 연결해 인공지능의 능력을 뛰어넘자는 게 구체적인 방법이다. 뇌에 브레인 임플란트나 통신가능 모듈을 이식해 컴퓨터의 능력을 뇌가 사용하도록 하자는 얘기다. 그리스신화에서 하반신은 말이고 상반신은 사람인 켄타우로스 같은 존재다. 1997년 아이비엠(IBM)의 체스용 컴퓨터 딥블루에 진 러시아의 체스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는 이후 컴퓨터와 인간이 한 팀이 되어 체스를 두는 체스경기 양식을 만들고 켄타우로스라고 이름붙였다.

각종 성형수술, 임플란트와 인공관절을 비롯한 다양한 인공장기 이식의 발달은 사람이 타고난 생명 조건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는 개선을 추구해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제성형의학회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인구 대비 성형수술 비율이 세계 최고인 나라다. 두뇌가 인간 향상 시도의 예외가 되리라는 기대는 비현실적이다.

유발 하라리 이스라엘 히브리대학 교수는 <사피엔스>에서 결국 인공지능에 밀려날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생물학적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컴퓨터와의 결합을 선택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새로이 등장할 인류는 더 이상 호모 사피엔스가 아닌 신적 존재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사람이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해서 스스로를 연마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은 변함없이 지속되어왔고 이는 현재의 성취를 이뤄낸 동력이다. 근대 이후 휴머니즘의 핵심은 자유와 책임을 지니고 도전을 통해 스스로의 능력을 신장해나가는 인간형이다. 공부와 기술 훈련을 통해 자신과 종족의 능력을 발달시켜온 사람이 인공지능과의 결합이라는 전에 없이 강력한 기회를 거부하기 어려운 배경이다. 학계에서는 이러한 최근의 인간 개량 논의를 ‘트랜스휴머니즘’이라고 말한다. ‘600만불의 사나이’처럼 기계장치와 결합한 새로운 존재는 어디까지 인간이고 기계일까. 장애 극복을 위한 휴먼 스토리로 출발한 인간능력 향상 시도가 인공지능을 만나면서 ‘인공지능 환경에서의 인간성’에 대한 새로운 물음을 던지고 있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