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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퀴즈도 바둑도 기계에 참패한 인간팀…그래도 “걱정 말아요 그대”

2017.01.10

[사람과 디지털]

인공지능 지능게임 분야에서 사람 추월

로봇과학자 한스 모라벡이 알려준 역설

“쉬운 문제는 어렵고 어려운 문제는 쉽다”

“기계보다 기계적인 일 잘하기 배운 게

그동안 인간성공의 길…그런 시대 끝나”

인공지능 ‘엑소브레인’이 지난달 31일 방송된 <장학퀴즈>에서 수능 만점자 등 쟁쟁한 퀴즈왕들을 물리치고 우승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제공

#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 알파고는 지난달 말 인터넷 바둑 사이트인 한국의 타이젬과 중국의 한큐에서 각각 마기스테르와 마스터라는 아이디로 60전 전승을 거두었다. 각각 한국과 중국, 일본의 랭킹 1위인 박정환·커제·이야마 9단 등 세계 바둑의 최고수들이 뛰어들었지만 누구도 1승을 건지지 못했다. 최고의 프로기사들이 제물이 되어 알파고의 성능을 업그레이드시키는 역할을 했을 따름이다. 지난해 이세돌 9단이 알파고를 상대로 펼친 다섯 차례 대국에서 1승을 거둔 3월13일의 4국이 알파고와의 바둑 대결에서 인간의 승리로 기록된 ‘마지막 승부’라는 성급한 평가가 나오고 있다.

# 지난해 12월31일 방송된 <장학퀴즈> 특집에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개발한 한국어 인공지능 ‘엑소브레인’이 퀴즈 강자들을 따돌리고 우승했다. 2016년 <장학퀴즈> 상·하반기 우승자, 2016학년도 수능시험 만점자, 퀴즈프로그램 <지니어스> 준우승자 등 퀴즈의 달인들과 벌인 승부에서 인간 퀴즈왕들은 엑소브레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엑소브레인은 미국 퀴즈쇼 <제퍼디>에서 우승한 아이비엠(IBM)의 왓슨을 모델로 삼은 자연어 기반 인공지능이다. 3단계의 10년 개발프로젝트 중 1단계를 완료한 시점에서의 테스트였다. 2, 3단계에서는 분야별 전문지식과 외국어 학습능력을 갖춘다는 계획이다.

새해 벽두부터 인간과 기계의 대결에서 ‘인간 진영’의 참패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월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현재의 직업 절반 가까이가 기계에 의해 대체될 것이라는 보고서가 발표되고 3월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이 인공지능의 승리로 끝난 것이 개막 경기라면, 최근 들려오는 승패 소식들은 인간과 기계 대결의 본경기가 시작됐다는 느낌을 준다.

딥마인드 최고경영자 데미스 허사비스는 지난 4일 트위터를 통해 알파고의 비공식 테스트를 치렀다며 “몇 차례의 공식 대국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 바둑협회들, 전문가들과 공동으로 정식 경기를 통해 상호 깨달음의 정신으로 바둑의 심오한 세계를 탐험하려고 한다”고 새로운 대국 계획을 공개했다. 지난해 이세돌 9단이 나서 1-4로 패한 대국에 대한 설욕전이 될 것이라는 기대보다는 최근 타이젬, 한큐에서 드러난 것과 같은 무참한 패배를 확인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짙다. 지난 3일까지 바둑 사이트에서 알파고와 한·중·일 프로바둑 최고수들 간에 치러진 대국은 승패만이 아니라 대국 내용도 초반부터 알파고의 일방적 우세였다. 평균적인 대국보다 훨씬 못 미친 170수 안팎에서 프로 고수들의 불계패가 나왔다. 역전되는 사례는 없었다. 이세돌 9단의 4국에서 실낱같은 희망을 보았던 바둑 애호가들이나, 이를 근거로 인공지능시대 사람의 강점을 역설했던 사람들이 우울해지고 있다.

하지만 체스, 퀴즈, 바둑 등 지적 게임의 승부는 과대평가되는 경향도 있다. 이들 종목은 지능과 판단력을 겨루는 게 특징으로, 지능을 갖춘 사람만 할 수 있는 게임으로 간주돼왔다. 사람들은 운동능력이나 집중력, 감각능력 등에서 기계나 동물이 사람보다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고 놀라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사람은 기계와 동물과 달리 지능을 갖춘 존재라는 데 광범한 동의가 있고, 지능은 사람을 다른 존재와 구별하는 대표적 특성으로 여겨졌다. 뛰어난 성취를 이뤄낸 이들은 대개 지능이 뛰어난 사람들이기도 했다.

최근 인지적 능력을 갖춘 똑똑한 기계들이 등장하고 사람과의 대결에서 승리하는 현실은 인간의 대표적 특징이 과연 지능만인지를 묻는다. 지능은 어쩌면 인간의 다른 능력처럼 기계가 쉽게 모방할 수 있는 영역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로봇과학자 한스 모라벡은 컴퓨터가 체스나 바둑처럼 고도의 논리적 작업을 수행하는 것보다 인간처럼 말하거나 걷는 게 훨씬 어렵다고 말한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기능을 분석해서 재구성하는 일종의 ‘역설계’인데, 인류가 오랜 진화과정에서 획득한 운동적·감각적 본능보다 나중에 획득한 인지적 기능이 역설계하기 훨씬 쉽다는 얘기다.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쉬운 문제는 어렵고, 어려운 문제는 쉽다’는 이 주장은 ‘모라벡의 역설’로 불린다. 전자계산기가 오래전에 인간의 지적 능력을 능가했지만 인간의 지적 기능과 판단력이 전적으로 대체되지 않는 것을 보면 일부 지적 영역에서 기계의 성취에 과도하게 긴장할 이유는 없다. 어쩌면 바둑이나 퀴즈와 같은 영역에서 인공지능이 사람을 따라잡는 것은 시간문제였을 따름이다.

근래에 인간의 지적 능력은 지능검사로 대표되는 아이큐로만 측정될 수 없고, 다양한 지능을 고려해야 한다는 다중지능 이론이 힘을 얻고 있다. <포천> 편집장 제프 콜빈은 최근 저서 <인간은 과소평가되었다>에서 기계가 따라할 수 없는 인간의 핵심적 능력은 사회적 소통을 통한 공감능력이라고 말한다. 콜빈은 그동안 “사람들 대부분은 기계보다 기계적인 일을 잘하는 법을 배움으로써 성공의 길을 걸었다. 그런데 그런 시대는 이제 끝나간다”며,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래야 마땅한 근본적인 인간의 모습에 더 가까이 가야 하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지능적 계산의 영역에서 기계에 사람이 지는 것은 정해진 일인데, 너무 놀라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