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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자동번역 쓰면 되는데…외국어 공부할 필요 있나요?”

2016.12.13

네이버·구글 등 번역 품질 큰 개선
인공지능과 기계학습 활용 덕분
단어별 일대일 아니라 문장 통째 번역

기계 똑똑해져도 최종 선택은 사람의 몫
대통령 연설문도 최종 판단은 대통령이

윤동주의 시 ‘참회록’을 구글 한-영 번역기에 입력해본 결과다. 어색한 부분이 있지만 기존 구글 번역의 품질에 비해 월등히 개선됐다. 구글은 인공신경망 기술을 적용한 결과 기존 번역 오류의 55~85%를 감소시켰다고 밝혔다.

기계 번역 환경의 외국어 학습

# 한 중학생 학부모가 “어차피 컴퓨터가 번역해줄 텐데, 기계도 아닌 내가 왜 고생스럽게 영어를 배워야 하나요”라는 자녀의 질문에 어떻게 답변해야 되느냐고 물어왔다. 한 고교 영어교사는 “시험과 입시 때문에 학생들이 지금 당장은 영어를 공부하지만, 컴퓨터가 번역을 하는 세상에서 학생들에게 ‘그래도 외국어를 배워야 한다’고 가르치려면 어떤 학습 동기를 부여할지 난감하다”고 고민을 전해왔다.

# 최근 만난 법학 교수는 20여년 전 통번역대학원에 진학하려 했다가 진로를 바꾼 계기를 말했다. 당시 영어 교수가 “머지않아 기계번역이 발달해 통번역 업무의 상당 부분을 기계가 처리하게 될 것이니 대학원 진학 시 다른 분야를 선택하라”고 추천한 게 진로 변경의 배경이었다. 그는 기계번역이 사람의 번역을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미 수십년 전부터 광범했다고 설명했다.

인공지능이 기계번역 분야에 적용되면서 번역의 품질과 완성도가 눈에 띄게 개선되고 있다. 네이버가 지난여름 출시한 인공지능 기술 기반의 번역 앱 파파고는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4개 언어를 번역하는데 사용자들로부터 기능이 상당히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구글은 11월 그동안 운영해오던 번역 서비스의 품질을 크게 개선했다고 발표했다. 딥러닝을 이용한 신경망 기계번역 방식으로 그동안 미흡했던 한국어-영어 번역이 크게 좋아졌다. 영어와 중국어, 한국어를 비롯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일본어, 터키어 8개 언어 조합에 우선적으로 개선이 이뤄졌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화상통화 서비스를 하는 자회사 스카이프에서 영어-스페인어 등 일부 언어의 자동통역 기능을 구현하고 있다.

기계번역 서비스를 이용해본 사람들은 최근의 품질 개선이 놀랍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적용 기술의 변화가 배경이다. 초기 기계번역은 문장을 단어와 구 단위로 쪼개서 번역 대상 언어로 하나하나 번역하는 과정이었으나 이후 방대한 기존 번역 문서 자료를 활용한 통계방식의 매칭이 활용되었고, 최근에는 여기에 인공신경망 방식의 기계학습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구글의 번역 서비스를 총괄하는 바라크 투로프스키는 지난 11월29일 기자간담회에서 “신경망 기술 덕분에 기존 번역 오류의 55~85%를 감소시켰는데, 이는 지난 10년간의 성과를 단번에 뛰어넘는 결과”라고 밝혔다.

실제로 구글 번역(https://translate.google.com)에 한국어 문장들을 입력하고 영어 번역 결과를 보면, 기존 수준과 대비해 큰 폭의 개선이 확인된다. 기계번역은 관용어로 사전에 올라 있지 않지만 해당 언어 고유의 미묘한 표현을 일대일로 번역하다가 엉뚱하거나 어색한 결과를 내놓기 일쑤였는데 최근 구글 번역은 달라졌다. 마치 사람이 번역한 것처럼 특정 단어들을 해석하지 않거나 새로운 표현으로 바꾸는 등 문맥을 이해하고 과감한 의역을 하는 게 나타난다. 물론 여전히 입력한 문장에 따라 품질 차이가 크고 완벽한 번역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기계번역은 데이터가 늘어날수록 완성도가 개선되는 구조이고 기계학습은 쉼없이 이뤄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계번역의 실용화는 시간문제일 따름이다.

인공지능 번역기술 덕분에 우리는 더 이상 언어의 장벽을 느끼지 않고 외국인들과 원활하게 소통하고 외국어 문서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날을 맞을 수 있을까. 외국어 학습법과 평가방법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실제 사용빈도 낮은 어려운 단어를 외우거나 평가하는 시험은 곧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기계번역 기술이 곧바로 외국어 학습의 무용론으로 이어진다고 보면 안 된다. 기계번역을 누구나 쉽게 활용할 수 있게 된 환경에서 외국어와 언어에 대해서 우리는 어떠한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2014년 국내에서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번역 논쟁이 있었다. 소설의 평범해 보이는 첫 문장 “오늘 엄마가 죽었다(Aujourdhui, maman estmorte)”는 번역의 어려움을 알려준다. “오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로 번역하면 작품 전체의 정서는 완전히 달라진다. <신약성서>의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man does not live on bread alone)”는 구절은 2000여년 전 히브리인들의 주식에 대한 정서를 ‘밥’ ‘떡’ ‘빵’ ‘음식’ 중 무엇으로 번역할지 고민스럽게 만든다. 아무리 기계번역이 개선된다고 해도 선택하기 어려운 문제다.

이는 기계번역을 사용하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어떠한 언어능력, 외국어능력이 필요할지를 묻는다. 언어는 단순한 기능이 아니라, 사고와 표현이 이뤄지는 인간의 본질적 능력이라고 보아야 한다. 통역, 번역과 같은 부분적 기능을 아웃소싱하는 형태로 외부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최후의 선택과 결정은 사용자의 몫이다.

마치 대통령의 연설문과 유사하다. 수많은 연설을 하는 바쁜 대통령이 직접 기념사나 연설문을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청와대 연설비서관실에 최고의 전문가들이 다양한 초안을 작성하고, 대통령은 그중에서 결정하거나 수정할 내용을 지시한다. 스피치라이터들이 실무를 맡지만 연설문은 대통령에 따라 방향과 수준 차이가 크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 외부 개입 과정이 보도되면서 서점가에선 <대통령의 글쓰기> <대통령의 말하기>가 베스트셀러가 되고 전직 대통령들의 연설문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상세히 알려지고 있다.

비서를 누구로 쓸지, 어떤 결과물을 선택할지, 무엇을 수용하고 수정할지 판단하는 일은 오롯이 결정권자의 몫이자 책임이다. 기계번역이나 인공지능 비서를 쓰게 된 우리도 마찬가지다. 외부에 더 많이 의존할수록 최종 결정권자가 똑똑하게 선택하고 판단할 능력과 책임이 더 중요해진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