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삼의 디지털 사피엔스

‘조용한 수다’는 ‘내용증명 대화’다

2016.07.19

[한겨레] 구본권의 스마트 돋보기

요즘 학생들은 ‘스마트폰에서 없앴으면 하는 기능을 하나 골라라’는 질문을 받으면 음성통화 기능을 지목한다는 얘기를 관련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청소년들은 친구들과는 주로 문자와 메신저 앱을 통해 대화를 주고받는다. 음성통화를 하게 되는 상황은 부모나 광고업체로부터 걸려오는 전화일 때다. 메신저가 대화를 대체하기 시작한 지 이미 오래다. 대화가 음성 아닌 문자로 이뤄지면, 장점이 많아 보인다. 대중교통을 이동하거나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얼마든지 조용하게 대화할 수 있고, 나중에 내용을 찾아보기도 좋다.

하지만 글로 대화하게 된다는 것은 내용의 전달을 넘어 언어 사용에서 획기적 변화를 가져오는 일이다. 사회제도와 각종 환경은 음성 대화에 익숙해져 있는 까닭이다. 말로 하나 메신저에 글로 쓰나, 같은 내용을 주고받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로 인한 영향은 다르다. 그걸 모른 채 메신저를 대화 도구로 사용하다 보면, 예기치 않은 상황에 처하게 된다.

자신의 지위와 공개발언이 갖고 있는 의미를 잘 알고 있는 유명인사들도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자신의 속내를 비치는 글을 공개적으로 올렸다가 문제가 되면 슬그머니 지우는 일이 흔하다.

말과 글이 갖는 영향과 책임의 차이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다가 곤경에 처하는 사례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당사자들로서는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말하던 것을 스마트폰 대화로 주고받았을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지난달 서울행정법원은 메신저 앱 단체대화방에서 여학생들을 상대로 성희롱 대화를 한 대학생들이 학교에서 무기정학을 받고 취소청구 소송을 내자 학교 쪽 손을 들어줬다. “단체대화방의 대화는 그 내용이 언제든지 유출될 수 있다”며 단체대화방을 열린 공간으로 보아 명예훼손과 모욕죄가 성립한다고 본 것이다. 지난 7일 수원지법은 메신저 앱에서 일대일 대화를 통해 치어리더를 비방한 야구선수에 대한 700만원 벌금을 확정했다. “일대일 대화라도 허위사실이 빠르게 유포되는 단초를 제공했다”고 판시했다. 법원이 잇따라 메신저 대화가 당사자만의 사적 대화가 아니라, 공개적인 발언이라는 점을 인정한 판례다.

이는 문자 대화가 일종의 내용증명 대화라는 걸 일깨운다. 동일한 내용을 나와 수신자, 그리고 제3자가 그대로 보관하고 있어, 문제가 될 경우 법적 증거가 된다는 의미다. 메신저 앱을 쓸 때 명심해야 할 사항이다.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