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10177_20160606_99_20160605210506

기사

“부모나 자녀, 다르지만 재미 추구는 동일…소통의 출발점”

2016.06.6

[한겨레] ‘행가레’ 디지털 시대의 놀이와 문화

인류역사에서 일과 놀이 분리 안돼
산업사회 이후 분리됐던 노동과 여가
디지털 시대에 다시 뒤섞이며 엉켜
일을 놀이로 만드는 게이미피케이션

웹툰 <닥터 프로스트>의 이종범 작가가 지난 2일 홍대 앞 미디어카페후에서 개최된 사람과디지털연구소의 ‘행복한 가족을 위한 디지털 레시피’ 프로그램에서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강의하고 있다. 조수경씨 제공

스마트폰과 인터넷으로 생활의 많은 영역이 바뀌었지만, 노는 방법과 모습도 크게 변했다. 자녀들이 스마트폰 대신 밖에 나가 뛰어놀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부모들이 가지지만 부모들의 어릴 적 환경과 아이들이 사는 세상은 다르다. 아이들은 왜 스마트폰을 통해서만 놀려고 하는 것일까? 알파고와 인공지능 시대는 사람들이 수행해온 많은 영역의 지적 노동을 똑똑한 기계가 대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인간의 창의성이 더욱 중요해지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말해준다. 디지털 시대에 창의성은 어떻게 길러질 수 있을까. 아이들이 놀지 못해서 창의성이 위협받고, 한편으로는 스마트폰만 끼고 노는 것 같아 불안한 부모들의 고민이 깊다.

한겨레 사람과디지털연구소가 주최하는 학부모 대상 연속 강연 프로그램 ‘행복한 가족을 위한 디지털 레시피(행가레) 2016’ 두번째 시리즈가 ‘디지털 시대의 놀이와 문화’를 주제로 5월20일부터 매주 1차례씩 서울 홍대입구 ‘미디어카페후’에서 세 차례 진행됐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

■ ‘놀이하는 인간’이 온다

<미학 오디세이> 등 미학 분야 베스트셀러 저자인 진중권(사진) 동양대 교수는 1강에서 ‘놀이하는 인간’(호모 루덴스)이 디지털 시대에 어떻게 새로움과 중요성을 얻고 있는지를 설명했다. 진 교수는 역사 속에서 일과 노동은 선명하게 분리되지 않았고, 인류 문명은 놀이 속에서 발달해왔으며 놀이는 문명의 일부분이 아닌 문명 자체였다. 중세까지 일과 놀이가 섞여 있던 게 청교도 혁명과 산업혁명 이후 둘이 분리된 시기가 있었으나 디지털 시대에 다시 만나 엉키고 있다. 산업자본주의는 자본가도 잉여자본을 소비하지 못하고 투자해야 했고 스포츠도 직업이 되는 세상이었지만, 이제 달라졌다. 디지털 환경은 놀 때도 업무지시가 끼어들지만 거꾸로 일도 놀이로 만들어버린다. 정보사회에서는 진지한 업무의 영역에 게임의 요소를 도입해 놀이처럼 만들어버리는 게이미피케이션이 점점 확산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은 현실에 가상과 상상력을 중첩시켜서 과거에 불가능했던 방식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물리적 노동만이 아니라 패턴화가 가능한 정신노동을 대부분 기계가 대신할 수 있는 상황에서 놀이할 줄 아는 인간의 속성을 발견하고 진지한 업무를 놀이처럼 바꿔내는 능력이 요구된다. 과거에는 예술가들만이 이런 경험과 가치를 추구했으나 이제는 대부분의 기업과 개인이 기술을 통해 유희를 일상과 접목시켜 기존 업무를 놀이처럼 바꿔내고 있다.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 인공지능과 다르게 사는 법

<지혜의 심리학> 저자인 김경일(사진)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는 2강 ‘인공지능과 다르게 사는 법’에서 인지심리학적 개념을 통해 우리의 사고와 판단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했다. 사람은 스스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하지만, 인지심리학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생각과 기억, 판단은 비이성적으로 진행되고 편견의 지배를 받는다. 김 교수는 우리가 보고 경험한 대로 인지하는 게 아니라, 기억을 편집하는 ‘메타인지’를 통해서 인식하고 판단이 이뤄진다고 지적했다. 인지심리학이 알려준 인간 사고의 작동 방식은 인공지능이 사람처럼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이는 최근 환경에서 더 중요해졌다. 인지심리학이 발견해낸 인간 사유의 특성 또는 약점이 인공지능 시대에는 기계가 모방할 수 없는 인간만의 강점이라는 얘기다. 컴퓨터와 인공지능이 아무리 방대한 정보를 보유하고 뛰어난 연산능력을 갖추고 있어도 인간의 능력을 절대 모방할 수 없는 영역이 있는데, 그것은 “모른다”는 판단을 기계는 인간처럼 빨리 할 수 없다. 기억과 연산을 필요로 하는 문제에 답을 내놓는 데서 인간은 기계를 상대할 수 없지만, 반대로 무엇을 모르는지를 파악하는 데서 기계는 인간을 뛰어넘을 수 없다고 김 교수는 강조했다. 기계는 모든 정보를 검색한 뒤에 비로소 “모른다”고 답할 수 있지만, 사람은 처음부터 “모른다”고 판단하고 다음 단계의 행동으로 진전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웹툰 작가인 이종범 청강문화산업대 교수

■ 왜 아이들은 웹툰에 빠져들까

웹툰 <닥터 프로스트>의 작가인 이종범(사진)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는 3강 ‘디지털 시대의 스토리텔링, 웹툰’에서 자녀들이 왜 웹툰과 스마트폰에 빠지게 되는지를 부모들에게 설명했다. 아이들은 너나없이 웹툰을 즐기지만 부모들은 과도한 몰입을 걱정해 차단하려 한다. 웹툰은 부모세대와 자녀세대 간의 소통 단절을 가져오는 도구로 지목되기도 한다. 부모와 자녀세대가 각각 선호하는 미디어와 콘텐츠는 다르지만, ‘재미’를 추구한다는 점은 공통된다고 작가는 말했다. 여가가 자투리 시간으로 주어지는 디지털 세대가 웹툰을 즐기는 이유와 환경을 이해하는 게 자녀와 소통할 수 있는 길이다. 오히려 자녀가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웹툰이건 게임이건 무엇 하나를 유일한 탈출수단을 삼는 현실이 되지 않도록, 다양한 길을 마련해주는 게 중요하다. 인기 웹툰작가로서 그는 웹툰의 특성과 매력을 보여주면서 아이들이 왜 웹툰에서 재미를 찾는지를 설명했다. 웹툰은 만화책을 단순히 인터넷으로 옮긴 게 아니라 전혀 새로운 문화 장르로, 한국이 처음 만들어낸 대표적 ‘문화발명품’으로 수출 전망도 밝다. 미래에는 재미난 이야기를 비롯해 무엇인가 창의적인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중요한데, 그 첫걸음은 자신이 만들고 싶은 분야를 마음껏 즐기는 행위가 우선이라는 걸 강조했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