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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감시’ 강화가 안전빗장?…기술적 해법 ‘창과 방패’ 논쟁

2015.11.30

00545126801_20151130이주공동행동, 이주인권연대 등의 회원들이 지난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광화문광장에서

테러방지법 제정 중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테러 이후 ‘통신 암호화’ 놓고 공방

129명이 숨진 테러 이후 2주가 넘어 파리는 빠르게 일상을 회복하는 모습이다. 29일까지 트위터에는 ‘나는 테라스에 있다’(#Jesuisenterrasse)나 ‘우리는 술집에 있다’(#Tousaubistrot)는 해시태그(꼬리표)를 달고 자신의 변함없는 일상을 주변에 밝히는 이들이 이어졌다. 비극 뒤에도 이어지는 삶의 모습이 테러에 대한 복수라는 여러 시민들의 공감대가 형성된 덕분이다.이제 전장은 프랑스의 핵 추진 항공모함 샤를 드골이 지난 23일(현지시각) 당도한 시리아로 자리를 옮겨가는 모습이다. 이와 함께 뜨겁게 달구어지고 있는 다른 전쟁터가 있다. 사이버 공간이다. 세계 각국에서는 파리 테러 뒤 테러리스트를 색출·검거하기 위해 온라인 추적이 쉽도록 법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과, 이에 맞서 표현 자유와 프라이버시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치열하게 맞붙고 있다.
“테러 관련되면 프라이버시란 없다”
FBI “통신감시 중단, 테러차단 못해”
국정원 권한강화한 테러방지법도 고개“IS는 암호화 수준 낮춰도 효과 없고
온라인뱅킹·전자구매에도 악영향”
00545282901_20151130한 프랑스 시민이 테러 위협에 굴복하지 않고 일상을 보내겠다는 뜻으로 해시태그
‘나는 테라스에 있다’(#Jesuisenterrasse)와 함께 소셜네트워크에 공유한 사진.
출처 인스타그램 sukkye
당장 테러 피해 당사자인 프랑스와 주모자 검거작전에 따른 보복 테러 우려에 싸인 벨기에에서 인터넷 제한 조처는 빠르게 도입되고 있다. 프랑스 법은 국가 비상사태 때 대통령에게 직권으로 사이트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폐쇄할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지난 13일 테러 직후 12일 동안의 비상사태를 선포했는데, 의회는 최근 이를 석달 연장하는 것을 승인했다고 미국 시사지 <애틀랜틱>은 24일 전했다. 벨기에 국회의원들은 테러리스트 혐의자들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지하드(성전)를 추앙하는 웹사이트들을 폐쇄하는 내용의 법안들을 속속 제안하고 있다. 벨기에의 고위 보안기구 당국자는 <뉴욕 타임스>인터뷰에서 “솔직히 말해서, 테러리스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 (시민의) 프라이버시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이라면 시민의 자유는 얼마든지 제한될 수 있다는 의견이다.
국내도 다르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은 24일 국무회의에서 이슬람국가(IS)를 언급하며 “(국내 집회에서) 복면 시위를 못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테러단체들이 불법 시위에 섞여 들어와서 국민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논리다. 여당 국회의원과 보수언론, 우익단체들은 연달아 테러방지법 통과를 주장하고 나섰다. 테러방지법은 국가의 통신 감시 권한을 대폭 강화하고, 그 권한을 국가정보원에 부여하는 내용을 뼈대로 하고 있는데 2001년 미국의 9·11 테러 뒤 처음 도입 논의가 불거졌지만 15년째 국회에 머물고 있다. <조선일보>는 우리나라 정보·수사기관의 자료 수집 능력이 미비해 테러 방지를 위한 국제협약인 부다페스트 협약에 가입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에 대한 감시능력 확충 필요성을 강조했다.
테러를 계기로 한 사이버 감시 강화에 대한 찬반은 세계적으로 ‘암호화’에 대한 논쟁에서 응축돼 나타난다. 오래된 이 논쟁에 먼저 다시 불을 지핀 쪽은 미국 정보기관들이다. 미 연방수사국(FBI) 제임스 코미 국장은 프랑스 테러를 막지 못한 이유로 “통신(감시) 중지”(going dark)를 지목했다. 민간 영역에서 고도의 암호화 기술을 이용한 서비스들이 등장하면서 정보기관의 감시가 어려워졌고 이는 테러리스트들의 은밀한 통신을 돕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번 테러의 행동대원들도 소니 플레이스테이션4 채팅을 비롯해 높은 보안 품질의 민간 제품을 모의에 사용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애플의 아이메시지(애플 전용 인터넷을 통한 문자메시지 서비스)나 국내 카카오톡의 비밀채팅이 이런 사례에 해당한다.
00545283101_20151130역시 같은 뜻의 해시태그 ‘우리는 술집에 있다’(#Tousaubistrot)를 형상화한 그림. 출처 트위터 @ASOS
하지만 반대자들은 암호화의 수준을 낮추는 것과 테러 위협을 줄이는 것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고 주장한다. 전직 미 국가안보국(NSA) 기술팀장인 재스퍼 그레이엄은 <애틀랜틱>인터뷰에서 “이슬람국가와 같이 할 수 있는 모든 극단적인 수단을 쓰는 단체에는 암호화 수준을 낮추는 정도로는 잡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제적인 이유도 무시할 수 없다. 미국의 진보성향 연구소 니스카넨센터는 지난 9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소비자들이 믿을 수 있는) 암호화 기술 없이는 전세계 40조달러(약 4경6000조원) 이상의 온라인은행 산업이나 3조3000억달러의 전자구매 산업이 존재할 수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디지털 감시 권한의 강화가 해법이 되기 어려운 이유는 기술이 무차별적이기 때문이다. 암호화는 시민의 자유롭고 사적인 통신을 보장하면서 동시에 그 때문에 범죄자들의 비밀스런 통신도 보장하게 된다. 둘 사이에 어느 한쪽을 분리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애플의 최고경영자 팀 쿡은 암호화 논쟁과 관련해 “어떤 백도어(주인 몰래 정보를 빼낼 수 있는 구멍)도 모두를 위한 백도어다. 테러리스트를 잡아내는 것이나 안전한 통신을 원하는 것은 모두 (똑같이) 원하는 바다. 방법은 그것을 어떻게 하느냐다”라고 말한 바 있다. 범죄자들을 잡아내는 데만 쓰는 별도의 구멍을 암호의 방화벽에 뚫을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전직 국가안보국 직원인 토머스 드레이크는 <한겨레>인터뷰에서 “(감시)기술 자체는 사실 문제가 없다. 기술을 손에 쥔 쪽이 어떻게 쓰느냐에 달린 것이다. 강한 힘을 쥔 쪽은 항상 이를 남용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테러리스트를 감시하는 데 개발된 기술이 똑같이 정치적 반대자나 시민을 감시하는 데 쓰일 수 있다는 말이다.
테러에 대한 우려가 여전한 지난 25일 아프리카 3개국 순방에 나선 프란치스코 교황은 “테러는 가난과 좌절에서 비롯된 공포와 불신, 절망을 먹고 자란다”고 말했다. 테러를 막기 위한 기술적 ‘요술방망이’는 없다. 교황이 말한 공포와 불신, 절망을 몰아내는 오랜 싸움이 해법일 수 있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