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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싸이월드 ‘백업 대란’으로 기억력 논란…사진 찍으면 잘 잊는다?

2015.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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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월드가 지난달 30일까지 진행한 싸이월드 백업 서비스 공지 화면. 수많은 이용자들이

몰리면서 서버가 다운되었고 싸이월드는 백업 서비스를 10월5~10일 2차로 다시 하겠다고

밝혔다. 출처 싸이월드

‘회상’도 경험 당시와 유사…디지털 아웃소싱 땐 생생함 사라져
자영업자 유훈(35)씨와 그의 친구들은 최근 추억에 잠겼다. 그는 지난달 30일, 이날이 기한이었던 싸이월드 백업 서비스를 받으면서 오랜만에 다시 만난 15년 전 사진들을 친구 6명과 함께 쓰는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 올렸다. 싸이월드는 한때 ‘국민 소셜네트워크’로 불리며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인터넷 서비스다. 최근 ‘싸이홈’으로 새롭게 개편하겠다고 밝히면서 회원들이 기존의 방명록, 일촌평, 쪽지 등을 백업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진행했다. “우리 참 어렸다”, “너 턱선이 있었구나” 등 저마다 감탄사를 쏟아냈다. 유씨는 “함께 그 시절로 되돌아간 듯해 참 좋았다”고 말했다. 이날 푸르렀던 과거를 찾아 오래전 자신의 싸이월드 기록에 접속한 이들은 유씨뿐만이 아니었다. 갑작스러운 방문자 폭주로 이날 싸이월드 백업 서비스는 일시 다운되어버렸다. 결국 싸이월드는 5일부터 10일까지 2차 백업 서비스 기간을 다시 두기로 결정했다.
디카·스마트폰·SNS에 기억 의존
디지털 환경에서 ‘싸구려’가 된 기억
사진 찍은 대상은 오히려 잘 회상못해
디지털 잘 써야 경험 되살리는 도구
디지털 시대에 기억은 싸구려 취급을 받아왔다. 디지털카메라, 스마트폰, 웨어러블 기기까지 삶에 스며든 각종 기기들이 순간을 기록하고 네트워크상의 외부 메모리에 이를 저장할 수 있게 되었다. 굳이 기억할 필요가 줄어든 세상에서 기억의 무게는 많이 가벼워졌다. 기록은 인류가 디지털 시대를 맞기 오래전부터 사용해온 기억 보조수단이다. 사람들은 과거에도 사진을 찍고 일기를 써왔다. 하지만 과정에 많은 공이 들어가고 시간에 따라 낡아가면서 보존도 쉽지 않은 당시의 기록과 그 기록이 담고 있는 기억의 무게감은 디지털 시대의 인터넷 방명록, 메신저 쪽지, 소개 사진 등의 가벼움과 성격이 다르다.
그뿐만 아니다. 쉬운 기록의 도구와 인터넷 공유는, 기억이 처음 탄생하는 순간인 우리의 경험을 부정확하고 약하게 만든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코네티컷주의 페어필드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인 린다 헹켈은 지난해 학술지 <심리 과학>에 소셜 미디어에 자신의 경험을 일일이 올리는 현대의 습관이 실제 경험과 기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와 관련된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헹켈 교수는 실험 참가자들을 데리고 한 지역 대학의 박물관을 방문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전시품들을 관찰하게 하면서 무작위로 어떤 전시품들은 사진을 찍어 기록하도록 요청했다. 이후 참가자들에게 전시품들에 대해 물어본 결과, 그는 사람들이 사진을 찍은 전시품에 대해서는 생김새 등에 대해 적게 기억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헹켈 교수는 미국 시사지 <애틀랜틱>과의 인터뷰에서 “이는 우리의 기억을 아웃소싱(외주화)시키는 것과 같다. 이 자체가 바보스런 일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삶을 끊임없이 한 순간에서 다음 순간으로 찰칵찰칵 사진을 찍는 식으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간직하고 나중에 기억하며 기뻐할 순간에 잠시 멈출 여유를 잃게 된다”고 말했다.
싸이월드가 ‘싸이홈’으로 개편을 맞아 이용자들에게 조사해 공개한 그래픽이다. ‘나에게 싸이월드는 ○○○다’, ‘싸이월드에서 가장 지키고 싶은 것은?’이라는 두 질문에 모두 ‘추억’이 1위로 꼽혔다.  출처 싸이월드
                                                                                                       싸이월드가 ‘싸이홈’으로 개편을 맞아 이용자들에게 조사해 공개한 그래픽이다.
                                                                                                             ‘나에게 싸이월드는 ○○○다’, ‘싸이월드에서 가장 지키고 싶은 것은?’이라는
                                                                                                                                  두 질문에 모두 ‘추억’이 1위로 꼽혔다. 출처 싸이월드

하지만 디지털 시대 이전부터도 우리의 기억은 원래 부정확하고 위태로웠다. 1986년 미국 에머리대학교의 인지심리학자 울릭 나이서 교수는 수업 학생들을 대상으로 간단한 실험을 했다. 그는 당시 1월28일 발생한 챌린저호 폭발 사건과 관련해 사고 소식을 처음 듣던 당시 상황을 기록해 달라고 학생들에게 요청했다. 우주왕복선 챌린저호의 폭발은 승무원 7명이 모두 숨진 비극적인 사고로서, 미국민들의 기억에 충격적인 사건으로 남아 있다. 나이서 교수는 2년 반 뒤에 같은 학생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사고 당시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기록을 물은 것이다. 결과는 흥미롭다. 큰 사고 당시의 기억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두번째 쓴 기억의 정확성이 평균은 총점 7점에서 3점 미만에 불과했다. 첫번째 기록과 완전히 다르게 쓴 학생의 수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정확성에 대한 자신감은 그렇지 않았다. 자신의 기억이 얼마나 정확하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학생들의 평균은 5점 만점에 무려 4.17점을 기록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믿는 것만큼 잘 기억하지 못하는 셈이다.

디지털 기억은 빈 부분을 채워주는 좋은 보조장치가 될 수 있다. 근래의 연구는 여기서 나아가 회상이 과거의 일에 대한 단순한 반복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미국 보스턴대학교의 심리학 교수 엘리자베스 켄싱어는 뇌화학 반응에서 어떤 일을 경험하는 과정과 이를 회상하는 과정이 매우 유사하다는 점을 밝혔다. 그는 <애틀랜틱>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어떤 일을 겪을 때 시각, 청각, 촉각적 반응들이 뇌에서 함께 일어난다. 우리가 그 일을 나중에 다시 생각할 때도 이런 여러 요소들을 함께 결합시키는 비슷한 과정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즉, 어떤 일을 회상하는 것은 그 일을 다시 겪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우리에게 다시 선사한다는 것이다. 남자들이 군대 이야기를 반복해서 하면서도 즐거워하는 것도 이런 효과와 같은 맥락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유훈씨가 10년 동안 쓰지 않았던 싸이월드를 다시 접속하게 된 일도, 페이스북이 수시로 타임라인에 ‘○년 전 당신의 오늘은’과 같은 게시물을 올려주는 이유도 이와 연관이 있다. 외장화된 디지털 기억은 거기에 너무 의존하면 우리의 실제 경험을 약화시킬 위험이 있지만 적절하게 활용할 경우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추억의 여행을 다녀올 기차표가 되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