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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소프트웨어가 집어삼키는 사회…“학생들에게 미래 무기를”

2015.09.8

소프트웨어 교육현장 가보니

00539362501_20150908                                                                                               ‘엘지씨엔에스(LG CNS) 스마트 아카데미’ 참가 학생들이 지난 7월 대전 카이스트(KAIST)에서

열린 여름 캠프에서 컴퓨터 회로를 응용한 수업에 열중이다. 엘지씨엔에스 제공

지난 2일 저녁, 서울 금천구에서 운영하는 자치문화공간 ‘꿈꾸는 나무’ 2층에 인근 5개 고등학교 학생 20여명이 모였다.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 진행되는 고등학생 소프트웨어(SW) 교육 ‘스마트 아카데미’ 3기 수업이 한창이다. 이날은 전체 6개월 과정 코스의 반환점을 도는 날로 그동안 배운 프로그래밍 교육을 바탕으로 실제 자신이 만들고 싶은 프로그램의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토론하는 날이었다. 6인 1조로 모인 학생들은 친구들과 농담과 웃음을 섞어가며 다양한 생각들을 소란스럽게 주고받았다.

모바일 혁명 여파로
소프트웨어 교육 중요성 절감
오바마 대통령도 적극적
국내선 입시부담 가중 논란

“수학을 어려워하는 학생들을 위한 수학 공식 프로그램은 어떨까? 모든 수학 공식을 넣어 놓고 (카메라로) 문제를 찍으면 (문제를 인식해서) 맞는 공식을 보여주는 거지.” “동네 피시방과 연계한 앱(스마트폰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어. 남은 좌석 정보 등을 전달해서 헛걸음을 하는 쓸데없는 수고를 덜어주는 거야.” “도서 십진분류법은 너무 복잡한 것 같아. 이름으로 책을 쉽게 검색해 대출할 수 있게 하고, 반납 때가 되면 알려주는 앱이 있었으면 좋겠어.” 학생이기 때문에 자신의 눈높이에서 같은 처지의 학생들이 필요로 할 만한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분출했다.

그중에는 일반인들에게도 유용할 만한 아이디어도 적지 않았다. 이날 강의를 맡은 이호용 엘지씨엔에스(LG CNS) 기술역량개발팀 차장은 “주변 화장실을 검색해주는 모바일앱 아이디어가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여러 사람에게 유용할 뿐 아니라 실제 구현도 가능하리라 보이기 때문이죠”라고 말했다.

스마트 아카데미는 정보기술 컨설팅 전문기업 엘지씨엔에스 주도로 2013년에 출범했다. 고등학생에게 정보기술 전반을 소개하고 스스로 프로그래밍을 해볼 수 있도록 가르치는 사회공헌 프로그램이다. 강의는 이 회사 직원들의 자발적인 재능기부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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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서울 금천구 ‘꿈꾸는 나무’에서 열린 ‘엘지씨엔에스 스마트 아카데미’ 교실에서

선생님으로 참여한 이 회사 직원이 고등학생 참가자에게 프로그래밍 교육을 하고 있다.

엘지씨엔에스 제공

지금 세계는 모바일 혁명으로 1980년대 ‘정보기술 붐’에 이어 두번째 정보통신 활성화 시기를 맞고 있다. 덩달아 소프트웨어 교육도 재조명을 받고 있다. 미국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나서서 프로그램을 짜는 코딩 교육을 강조하고 있는데, 연령과 본업에 상관없이 누구나 일주일에 한시간씩 코딩을 배우자는 ‘아워 오브 코드’(hour of code) 캠페인 참가자는 2000만명을 넘어섰다. 핀란드는 지난 7월 아이들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스마트폰과 컴퓨터로 넘어간 점을 고려해 전통의 필수 교과목이었던 손글씨 수업을 폐지하고 컴퓨터 활용 교육을 강화하기로 했다. 일본, 영국, 이스라엘 등은 소프트웨어 교육을 필수 과목으로 지정하고 있는 나라들이다.

우리나라 역시 소프트웨어 교육을 학교 정규 교과에 포함시키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하지만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가혹한 입시교육을 아이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현실에서, 초중등 교육에 소프트웨어 과목을 위에 또 얹는 것이 맞느냐는 것을 놓고 논란이 있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해당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주변에서 이를 제대로 배울 경로를 찾기가 어려운 것도 지금 상황이다. 스마트 아카데미는 서울에서도 정보화 교육 여건이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지역에서 소프트웨어 관련 지식을 접할 수 있는 계기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날 만난 이현민 학생(금천고 1)은 “중학생 때 그나마 컴퓨터를 배울 수 있는 공업고에 가고자 했지만 배정받지 못해 눈물도 흘렸어요. 다양한 기술을 접할 수 있는 이 과정은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기업, 학교, 지방자치단체, 비정부기구(NGO) 등 4개 주체가 협업하는 4각 공조는 아카데미의 특징이다. 기업은 교육 프로그램 및 사내 직원들의 재능기부와 노트북 등 교육 자재를 지원하고, 금천구 5개 학교는 학생들의 모집 및 진로상담을 맡았다. 참여 직원들은 일과 뒤에 교육장에 와서 아이들에게 코딩 등을 가르친다. 금천구청은 장소 및 행정지원을, 시민단체 서울시립문래청소년수련관은 청소년 관련 활동 노하우를 바탕으로 직접적인 운영을 담당했다. 금천구 교육지원과 김한아 주무관은 “기업의 사회공헌 교육들은 높은 수준을 꾸준히 유지하기 쉽지 않은데 스마트 아카데미는 그런 면에서 모범적이다. 기업과 여러 주체들이 결합하는 이런 활동이 더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프로그래밍은 사고를 논리적으로 옮긴 코드가 컴퓨터와 기술의 힘을 빌리면 다른 제조 과정을 거치지 않더라도 그대로 작동하는 현실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 다른 기술과 구분되는 특징이다. 1기 때 인연을 맺은 뒤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해 지금은 봉사요원으로 교육에 참가중인 황성욱씨는 프로그래밍 교육의 장점에 대해 “꿈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점”이라고 말한다. “어떤 일을 실현하려면 구체적인 단계들이 필요한데 프로그래밍은 이를 단계별로 분석해 구체화하는 데 도움을 주죠.” 1·2기 참가 학생 일부는 교육 뒤 자체적으로 동아리를 만들어 자기 학교의 앱을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여행사를 차리는 게 꿈이라는 참가자 김혜진(동일여자상고 1)양은 “이런 분야에 대해 잘 모르고 관심도 적었지만, 정보기술을 중심으로 사회가 점차 변화하는 시기에 기술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참여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1기 때부터 꾸준히 재능기부를 하고 있는 엘지씨엔에스의 김혜원 개발플랫폼솔루션부 대리는 “교육을 통해 아이들이 자신들의 진로를 막연한 꿈에서 구체적인 그림으로 그려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