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38449901_20150825

기사

만능 3D프린터로 손수 제작…제조업 개혁 이끌까

2015.08.25

00538449901_20150825

지난 20일 대구시 동구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열린 ‘2015 한·중·일 패션 웨어러블 메이커톤’

행사가 열렸다. 김승환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람과 디지털] 국내에 부는 ‘메이커운동’ 바람
지난 20일 대구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는 한국과 중국, 일본 등 세 나라의 ‘메이커’들이 모인 ‘한·중·일 패션 웨어러블 메이커톤’ 대회가 열렸다. 메이커 하면 보통 제조업체의 브랜드를 지칭하는 말로 이해한다. “이 가방이 어디 메이커니?” 하는 식이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메이커는 전혀 다른 뜻이다. 영어 단어(maker)는 제조사를 뜻하는 메이커와 같은데, 여기서 메이커는 ‘만드는 사람’을 뜻한다. 컴퓨터 프로그램, 전자제품, 로봇부터 액세서리나 가구, 요리까지 직접 자신의 손과 머리로 각종 물건을 만드는 이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새 직장과 산업 만들 제조업혁명”
제작도구와 네트워크 발달 견인
스스로 기술 익혀 창조하는 문화미 FDA, 3D프린터로 약 제조 첫 승인
물질 독점한 거대제약사의 통제 관건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창의과학재단이 주최한 이날 행사는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는 ‘메이커 운동’ 바람이 국내에도 불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섬유·의류 기술 단지에 자리한 대구혁신센터에 모인 참가자들은 패션과 전자 기술이 접목된 다양한 제품들 제작에 2박3일간 머리를 맞댔다. 참가자 디자이너 권민주씨는 이날 행사가 “전문가 멘토링을 받고 중국, 일본의 뛰어난 메이커들과 협업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고 말했다. 한국창의과학재단은 이날 메이커들 간의 교류를 돕는 온라인 플랫폼 ‘메이크올 닷컴’(www.makeall.com) 문을 열었고, ‘대구·경북 메이커스 네트워크’도 출범시켰다. 홍보대사로는 평소 손수제작(DIY)을 즐겨 해왔던 가수 구준엽(클론)씨가 참여했다.
2000년대 중반 영미권에서부터 떠오르기 시작한 메이커 운동은 현재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6월 백악관에서 첫 ‘메이커 페어’(메이커들의 축제)를 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여러분의 프로젝트는 현재 미국 제조업에서 일어나고 있는 혁명을 대표한다. 이 혁명은 앞으로 수십년 동안 우리가 새 직장과 산업을 만들도록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지난 2013년 10월 메이커 운동이 중국에서도 자리를 잡고 있다며 “전세계에 수백개의 해커스페이스(메이커들이 모이는 장소)가 있는데 중국에도 이미 10여개가 만들어졌다”고 전했다.
메이커 운동은 손수제작 문화에서 영향을 받은 바가 크다. 손수제작은 가구 제작이나 생활용품 수공업 등으로 국내에 많이 알려져 있는데, 전문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기술을 익히고 창조하는 문화를 말한다. 손수제작 문화의 원형을 보인 영역으론 음악이 꼽힌다. 1970년대 ‘펑크’라는 장르로 대변되는 일련의 문화운동은 거대 음반회사가 주도하는 음악의 상업화에 반기를 들고 누구나 편하게 연주하고 음반을 제작하는 문화를 주동했다. 이후 이런 식으로 전통적인 생산자와 소비자, 이분법의 구조를 깨뜨리고자 하는 저항적인 문화 양식이 각 영역으로 퍼져나가 손수제작과 메이커 운동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요리 역시 오랜 전통의 손수제작 분야로 꼽을 수 있는데, 근래 국내에서 직접 요리하는 이들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부쩍 높아진 점도 메이커 운동과 연관해 주목된다.
메이커 운동이 퍼지는 배경에는 기술의 발전이 있다. 특히 컴퓨터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각종 도구들의 가격이 비약적으로 떨어진 것이 개인의 생산능력을 크게 확장시킨 계기가 되었다. 예를 들어 금속을 원하는 모양으로 깎는 데 쓰이는 밀링머신의 경우 과거 수억원에 달하던 것이 지금은 수백만원대까지 떨어졌다. 정보기술의 발달도 결정적이었다. 스스로 무엇인가를 만든다는 메이커 정신은 관심 분야에 대한 몰입과 자기만족적인 헌신을 불러왔는데, 네트워크가 이들 사이를 연결하면서 기술의 교환과 도전정신을 자극했다. 덕분에 창조성과 기술도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다. 메이커 문화의 핵심에 있다고 평가받는 기술은 ‘3차원(3D) 프린터’다. 3차원 프린터는 궁극적으로 제조업을 붕괴시키고 생산과정을 개인에게 돌려줘 ‘민주화’하리라는 전망까지 낳고 있다. 3차원 프린터는 프린터가 문서를 찍듯 플라스틱 사출이나 금속 절삭 방식으로 여러 형태와 재질의 물체를 원하는 대로 직접 찍어낼 수 있는 기기를 말한다.
반론도 만만찮다. 이달 초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사상 처음으로 3차원 프린터로 찍어낸 약을 처음으로 승인했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지역 약국이나 각 가정에서 ‘맞춤형 약’의 제조로 이어지기보다는 과거 거대 제약사의 역할을 유지하는 쪽으로 이어지리라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 시사주간지 <애틀랜틱>은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산업역사학자 그레고리 힉비 교수의 말을 인용해 “(새 기술 등장으로) 현재의 제약 방식이 100년 전 개별 약사들이 각자 약을 제조하던 시기로 되돌아갈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프린터에 들어갈 물질을 개발하고 당국의 허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거대 제약사다. 이들의 통제 능력은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른 기술의 개입도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책의 경우 현재 기술로도 얼마든지 지역 서점에서 찍어내는 분권화를 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 대신에 온라인 배송업체들을 통해 출판사의 책을 사고 있다.
메이커 운동의 향방은 가늠하기 어렵지만 물살을 타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구글의 공동창업자 래리 페이지는 학부생 시절에 레고 블록으로 잉크젯 프린터를 직접 만드는 메이커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꿈을 키웠다. 메이커 정신은 벤처의 강력한 모태가 된다. 프로그래밍을 공부할 수 있도록 돕는 온라인 강좌 플랫폼 ‘생활코딩’(www.opentutorials.org)의 운영자 ‘이고잉’(아이디)은 “도구가 강력해지고 자료가 풍부한 요즘은 코딩하기 좋은 시대”라고 평했다. 무엇을 만들기 좋은 시대라는 말은 프로그래밍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