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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서태지도 인정한 ‘공유’의 두 얼굴

2015.03.31

가수 서태지씨가 지난 26일 방영된 <한국방송>(KBS)의 <명견만리> 프로그램에 출연해 공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서태지는 지난해 10월 신곡 ‘크리스말로윈’을 발표하면서 노래를 구성하는 보컬과 악기 각각의 음원 파일을 모두 공개했다.< 한국방송> 화면
[사람과 디지털] ‘인터넷 공유’를 둘러싼 두 시각
“손쉬운 공유가 새 창작 동력” vs “조리법 공개로 음식 맛 비슷”
지난 26일 <한국방송>(KBS)의 강연 프로그램 <명견만리>에는 가수 서태지(43)씨가 출연했다. 지난해 말부터 방송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지만, 그는 여전히 텔레비전과 거리감이 있다. 1991년 “난 알아요”를 외치며 등장한 그는, 우리가 무엇을 모르고 있었는지 일깨우며 ‘문화 대통령’으로 불렸다. 이날 강연자로 나선 구글 김현유(미키 김) 상무는 그를 1990년대의 음악적 “천재”라고 지칭했다. 하지만 서태지 본인은 스스로를 “천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날 강연 주제는 ‘천재 시대의 종말-창조는 공유다’였다.
서태지는 지난해 10월 신곡 ‘크리스말로윈’을 발표하면서 이 노래의 스템파일을 공개했다. 스템파일이란 곡을 구성하는 보컬과 악기 각각의 음원 파일을 일컫는 말이다. 음식으로 치면 “레시피뿐 아니라 식재료”(서태지)까지 포함한다. 뮤지션으로서 ‘영업비밀’에 가까운 이 파일을, 그가 “발가벗겨지는” 기분을 느낀다면서도 공개한 이유는 무엇일까?
서태지, 신곡 스템파일까지 파격공개
이후 다양한 활용으로 노래 인기 동력
빠른 확산과 평가로 맛 익을 시간 부족
장점 불구 ‘너무 쉬운 공유’의 그늘도
20년 넘는 창작의 여정에서 내린 결론이 공유이기 때문이다. 서태지는 이날 “안 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스템파일 공개 뒤 수많은 아마추어와 지망생의 손을 거쳐 크리스말로윈은 다양한 노래들로 재탄생하며 꽃을 피웠다. 홀로 극심한 창작의 고통을 겪으며 방황도 했던 ‘천재 음악인’ 서태지가 도달한 결론이 공유라는 점은, 공유가 이 시대 사회와 문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다.
유튜브는 대표적인 동영상 공유 플랫폼으로 공유문화 확산에 선봉장 노릇을 해왔다. 무명의 고등학생이 기타 연주 동영상을 올렸다가 일약 스타덤에 오르기도 하고, 전세계 사람들이 한 소절씩 부른 노래들이 모여 서로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로 구성된 감동적인 ‘인터넷 합창’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구글의 자회사인 유튜브는 지난 26일 ‘아티스트를 위한 유튜브’를 출시해 공유문화 확산에 박차를 가했다. 이 누리집을 통해 음악가들은 좀 더 쉽게 자신의 작품을 대중과 공유하고 피드백을 받고 십시일반을 통한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유튜브는 “훌륭한 음악을 만드는 것은 훌륭한 유튜브 동영상을 만드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공유에는 그 소중한 가치만큼이나 잘 드러나지 않는 이면도 있다. 디지털 기술과 인터넷이 공유 시대의 지반을 이루는 기술적 뼈대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공유의 가치를 앞장서서 확산시키는 대표적인 주체들이 글로벌 인터넷 기업이라는 점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기업이 공유문화를 퍼뜨리며 실제 여러 열매를 맺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단지 이들이 인류의 문화를 증진시키고 젊은이들의 창조적 정신을 고무하기 위해서만 그런 활동을 펼친다고 생각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시장조사업체 제니스옵티미디어는 지난해 인터넷광고 시장 규모가 1210억달러(약 133조원)에 이른다고 추정한다. 세계 광고시장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비중이다. 아이디어의 세계적인 공유 플랫폼이라는 이상으로 출발한 인터넷은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과 결합하면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광고 플랫폼이 되었다. 어쨌든 공유에도 그 플랫폼을 유지하기 위한 돈은 누군가 지불해야 하는 법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콘텐츠를 올리고 공유할수록 더 많은 연결이 만들어지고 인터넷 기업들에는 더 많은 광고 수익이 돌아가기 마련이다.
유튜브가 지난 26일 공개한 ‘아티스트를 위한 유튜브’의 시작 화면. 인터넷 갈무리
그래도 사용자 입장에서 돈이야 누가 벌든 전에 없던 대중의 아이디어가 결합해 새로운 문화 콘텐츠가 탄생하고 이를 만끽할 수 있는 환경은 환영할 만한 일 아닐까? 공유문화와 인터넷 자체에야 문제가 없지 않으냐는 반론이다. 유명 요리사 데이비드 창은 조금 생각이 다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그가 “모든 음식의 맛이 비슷해지고 있다. 인터넷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지난 15일 보도했다. 그는 14일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열린 기술과 음악의 축제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XSW) 축제 강연에서 인터넷이 요리사들의 혁신을 저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세계 최고의 라멘(일본식 면요리)집에 대한 누리집은 아마 10개는 족히 될 것이다. 멋진 일이지만 이런 환경은 요리의 인구다양성에 상처를 입힌다. 이제 요리사들의 분투(또는 경쟁)가 없어졌다. 분투는 어떤 창조적 과정에도 매우 중요한 것이다.” 전문 사이트나 블로그를 통해 평가가 금세 전파되고 즉시 나타나면서 젊은 요리사들이 새로운 시도를 해볼 기회가 위축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 그는 인터넷을 통하면 레시피를 너무 쉽게 얻을 수 있게 되면서 과거 요리 문파마다 스승을 통해 도제식으로 배우며 키워온 맛들이 점차 사라지고 획일적인 맛만 남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창의 요리 다양성에 대한 걱정은 공유가 반드시 다양한 문화와 콘텐츠의 융성으로 직결되진 않는다는 점을 시사한다. 공유의 부작용이다. 또 학생들이 친구의 웃기는 사진을 인터넷에 올렸다가 의도하지 않게 친구에게 상처를 주거나, 연예인들이 데뷔 전에 인터넷에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했다가 나중에 대중의 뭇매를 맞는 일들이 있는 것처럼 공유에는 숨겨진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여러 아름다운 사례들과 장점에도 공유에 대한 성찰 없는 찬양이 위험한 이유는 다양하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