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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쪘어요” 추가했다 역풍…“소통 93%는 몸짓과 음성”

2015.03.24

애플이 준비중인 차세대 운영체제(iOS)에 포함될 이모티콘들. 맨 왼쪽의 황인종은 색깔이 너무 노란 바람에 인종차별적 비하 표현 아니냐는 논란을 불러왔다.
[사람과 디지털] 문자소통시대 ‘이모티콘’ 주목
직장인 곽아무개(35·여)씨는 요즘 근무시간의 즐거움이 하나 사라졌다. 회사는 얼마 전 사내 메신저 서비스를 개편하면서 이모티콘 기능을 빼버렸다. “스마트폰 메신저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지만, 그나마 다행이었는데 완전히 사라진 거죠.”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했다. “표현 방법을 잃어버렸으니까요. 어떤 이모티콘을 붙이느냐에 따라서 같은 말도 의미가 많이 다르잖아요.”
이모티콘의 인기가 높다. 스마트폰 확산과 더불어 문자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이 잦아지면서, 표현을 다채롭게 하고 그림과 색을 입히는 이모티콘의 활용도가 점점 커져가고 있다.
문자로는 전달 힘든 ‘감정’ ‘기분’
다양한 아이콘 추가하지만
사용자들 “비하 표현” 민감 반응
내용에 알맞은 이모티콘 보내기
문자위주 소통에서 새 스트레스
세계 최대 스마트폰 생산자인 애플은 얼마 전 이모티콘으로 곤욕을 치렀다. 지난달 모바일 운영체제인 아이오에스(iOS) 8.3의 변경안을 내놓았는데 문자에 포함된 ‘황인종’ 이모티콘이 문제였다. 베타버전은 기존에 단조로웠던 이모티콘을 확대하여 32개 국기와 300여개 얼굴 모양 등이 포함되었고, 얼굴의 표현도 6개 인종으로 나눠 다채로워졌다. 문제는 황인종으로 보이는 노란색 얼굴 이모티콘이 다른 이모티콘들에 비해 유난히 노랗게 강조된 점이었다. 중국을 중심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시끌벅적했다. “충격적일 정도로 노랗다”, “심슨(얼굴색이 노란 미국의 유명 만화 캐릭터)인가”, “아시아인 비하다” 등의 반응이었다. <워싱턴 포스트>도 화제로 다뤘다. 이모티콘에 인종 다양성을 살린다는 취지가 오히려 인종차별 논란으로 후퇴할 위험을 맞은 셈이다.
이모티콘이 문자 표현의 보조도구로 쓰이는 데 머무는 게 아니라 국제적 또는 사회적인 논란을 불러오는 현상은, 대중이 느끼는 기대와 중요성을 말해준다. 애플은 해당 이모티콘이 꼭 황인종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명에 나서며 수정하지는 않았지만, 페이스북에서는 달랐다.
페이스북 상태 아이콘 가운데 ‘살쪘어요’는 살찐 사람에 대한 나쁜 인식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결국 삭제되었다.
페이스북에서 자신의 상태를 나타내는 아이콘 가운데 ‘살쪘어요’라는 메뉴였다. 사람들은 ‘좋아요’나 ‘힘들어요’ 따위가 아닌 ‘살쪘어요’가 어떻게 기분이 될 수 있느냐고 항의했다. 까다로운 사용자만의 불만이 아니었다. 누군가 ‘살쪘어요’를 오늘의 기분으로 해두었을 때, 더 과체중인 사람들이 느낄 자신에 대한 비하감이 문제가 된다. 또 섭식 장애를 겪고 있는 이들에게 이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결과적으로 외모를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를 더 조장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살쪘어요는 감정이 아니다’(#fatisnotafeeling)라는 해시태그를 만들어 트위터 등으로 공유하고, 글로벌 온라인 청원 누리집(change.org)에서 서명운동까지 벌였다. 페이스북은 결국 이 아이콘을 빼기로 했다.
고승덕 전 서울교육감 후보를 패러디한 카카오톡 이모티콘 사진.
국내에서도 이모티콘은 사회적 관심사와 현상을 담아내는 도구로 쓰이곤 한다. 지난해 6·4 지방선거에선 서울교육감 후보인 고승덕씨 맏딸의 아버지에 대한 공개 비판이 화제가 되었다. 고 전 후보는 기자회견을 열고 “미안하다”고 외치며 여론을 돌리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이는 카카오톡 이모티콘으로도 재탄생되며 유머로서 사람들의 대화에 다양하게 변주되었다.
모바일 메신저에서 이모티콘의 역할은 더욱 크다. 네이버의 메신저 서비스 ‘라인’에는 사용자들이 스스로 스티커(대화 중에 쓰이는 그림과 문자들로 이모티콘과 비슷한 뜻)를 만들어 등록하고 공유하거나 판매할 수 있는 ‘크리에이터스 마켓’이 있는데, 지난 20일까지 국내에 등록된 사용자 창작 스티커의 개수만 5만6455개에 이른다. 지난해 7500억원대인 라인의 전체 매출에서 스티커가 차지하는 비중도 20%를 넘어섰다. 라인 서비스 본사가 위치한 일본에서 크리에이터스 마켓은 더욱 활성화되어 있는데 스티커를 통해 백만장자 대열에 등극한 이가 등장해 ‘라인장자’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런 유행에 힘입어 직접 이모티콘을 만들어낼 수 있는 앱들도 인기다. ‘페이스콘’이나 ‘와이콘’(ycon) 등의 앱은 다양한 틀에 자신의 얼굴 등을 집어넣어 스스로의 이모티콘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문자에서 그림으로, 단순한 그림에서 사회적 패러디로 확장하고 있는 이모티콘의 표현 능력이 무한한 개인화와 참여적인 재미로 분화하고 있는 셈이다.
타이 공주 마하 짜끄리 시린톤이 라인 크리에이터스 마켓(사용자 참여 시장)에 직접 그려 등록한 스티커. 이 마켓엔 많은 이들이 직접 이모티콘을 그리고 표현하는 활동으로 활발하다.
하지만 이모티콘에는 다른 면도 있다. 강사 김아무개(34)씨는 사회관계망서비스나 메신저 등에서 이모티콘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적지 않다고 한다. “모두 다 기본으로 이모티콘을 활용한 표현을 하다 보니 습관이 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어느 정도 이모티콘을 달아 주지 않으면 상대방이 ‘기분이 나빴느냐’고 물어오는 식이죠. 반대로 어떤 분들에게는 이모티콘을 했다가 실례가 되기도 하고요. 그 적절한 수준을 찾고 표현하려니 스트레스가 되는 거예요.”
의사소통을 통한 인상의 형성에서 여러 채널(통로)들이 갖는 비중을 연구한 ‘머레이비언의 법칙’이란 것이 있다. 인상 형성에서 대화의 내용(문자)은 7%, 소리(상대방의 목소리 등)는 38%, 모습(얼굴 등)은 55%를 차지한다고 한다. 우리가 7%의 문자메시지 안에서 표현의 다양성에 몰두하는 동안, 93%를 차지하는 온라인 바깥의 소통방법을 소홀히 하고 있진 않은지도 함께 돌아볼 필요가 있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