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삼의 디지털 사피엔스

‘2014 최고발명품’은 어쩌다 ‘민폐템’이 됐나

2015.03.17
오스트레일리아 신문 헤럴드선에 실린 셀카봉 소재의 카툰.

[구본권의 스마트 돋보기]

셀카봉 ‘전시품 훼손 가능’ 이유 박물관 등서 ‘금지’

개인적으로 유용한 도구가 사회에 위험 되는 상황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에 의해 ‘2014년 최고 발명품’의 하나로 선정된 ‘셀카봉’이 2015년 벽두부터 곳곳에서 ‘민폐 아이템’이 되고 있다.3월 초 프랑스의 베르사이유궁전과 영국 런던의 국립미술관은 관광객들의 셀카봉 사용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파리 오르세미술관은 사진 촬영 자체를 금지한다. <르몽드>에 따르면, 루브르박물관과 퐁피두센터도 셀카봉 금지를 검토하고 있다. 미국 워싱터디시(DC)의 스미소니언 박물관들은 카메라 휴대와 촬영은 허용하지만 셀카봉 사용은 금지했다. 시카고의 디트로이트의 아트인스티튜트, 뉴욕의 근대미술관(MoMA)과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구겐하임미술관도, 로스앤젤레스의 게티센터와 게티빌라도 셀카봉 반입을 금지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캔버라 국립미술관도 셀카봉 금지다. 이탈리아 로마의 콜로세움은 2월 방문객들이 셀카봉을 휴대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달초 2명의 미국 관광객은 콜로세움 벽에 자신들의 이름을 새긴 뒤 셀카봉으로 사진을 찍다가 체포됐다. 유적지와 박물관만이 아니다. 올해초 도쿄 디즈니랜드는 입장객들의 셀카봉 사용을 금지했다. 영국축구 프리미어리그 아스널과 토트넘 홋스퍼도 홈구장에서 셀카봉 반입을 막고 있다. 영국 최대 실내공연장인 그리니치의 오투(O2)아레나도, 싱가포르 국립경기장도 셀카봉을 금지했다. 남미 국가들은 축구장에서 셀카봉 사용을 차단하고 있으며, 올해 브라질 리우카니발 행진에서도 셀카봉은 금지됐다. 여행객의 필수품으로 각광받는 셀카봉이 정작 세계적 관광지에서는 사용이 금지되고 있는 것이다. 유명 박물관과 경기장의 셀카봉 금지 정책은 셀카봉 인기에서 비롯한다. 한두 사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1m 길이의 쇠막대를 머리 위로 치켜든 상황의 잠재적 위험 때문이다. 유물이나 전시품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와 셀카봉 촬영자들로 인해 다른 사람들의 시야를 방해하고 차분한 감상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만든다는 관람객들의 불만이 주된 이유다. 경기장과 축제에서는 유사시 흉기로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금지 사유에 보태졌다.

일러스트레이터 롭 도비(Rob Dobi)가 음악 전문사이트(Noisey.com)에 실은 그림. 출처 롭 도비의 트위터(@Robdobi)

셀카봉 잘못이 아니다. 사용자들이 셀카봉을 쓸 때 적절한 장소와 때를 구분하지 못한 채, 아무데서나 치켜드는 게 문제다. 사실 셀카봉은 새로운 발명품이 아니라, 사진전문가들이 사용하던 모노포드(일각대)의 한 유형일 뿐이지만 대중화되면서 문제도 함께 나타났다. 과거 카메라와 함께 삼각대나 모노포드를 다니는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 도구를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이 많았다. 이젠 달라졌다. 셀카봉은 값도 싸고, 휴대도 간편하다. 사용법은 따로 익힐 필요도 없을 정도로 간단해 누구나 휴대하고 다룰 수 있다.

싱가포르 국립경기장의 셀카봉 금지 안내

디지털 기술 발전과 개인화 추세도 배경이다. 기기들은 더욱 손쉬운 휴대가 가능해져서 늘 지니고 있게 되거나 몸의 일부처럼 부착하게 된다. 스마트폰에 이어 스마트워치가 주목받고 있다. 도구가 더욱 개인화되어 신체의 일부처럼 늘 휴대하게 되는 상황은 기술의 사용에 관해 새로운 문제를 던진다. 나는 개인적 도구로 사용하고 있지만 그 쓰임은 나의 목적을 넘어 사회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상황이 된다. 나의 ‘개인적 용도’가 다른 사람들의 이익이나 안전 또는 심리적으로 새로운 위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신기술은 실제 쓰이는 상황에서 사용자의 성찰과 에티켓도 필요하지만, 설계와 개발단계에서부터 다양한 고려가 필수적이다. 대표적 본보기가 구글안경이다. ‘촬영(take a video)’ 명령어 하나로 보이는 모든 것을 촬영하고 궁금한 것을 인터넷으로 검색할 수 있어 그 착용자를 사이보그처럼 강력하게 만들어주는 기술이다. 하지만 구글이 구글안경을 수술실이나 출입국 심사대와 같은 특별한 장소와 용도로 제한하지 않고,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일반판매에 나서면서 그에 대한 사람들의 불안과 우려는 기술에 대한 긍정적 기대를 압도했다. 착용자는 강력하게 만들어주지만, 나머지는 발가벗은 상태가 되도록 하는 기술이 될 수 있다. 결국 구글안경은 출시하자마자 쓴맛을 보고 시장에서 철수했다. 기술이 실제 사용되는 상황에서 나타날 사회적 영향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면, 그 기술은 개발자의 확신이나 기대와 달리 사용자들의 냉정한 따돌림을 받게 된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